일본 정부가 최근 엔화 강세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 대장성 차관은 엔화 강세가 불가피한 현상이며 심지어 바람직하다는 반응까지 드러내고 있다.하지만 이는 일본측이 현재의 사태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엔화가 지난해 8월 달러당 147엔대마저 붕괴됐을 때 국제사회는 아주 위험스러운 눈길로 지켜봤다. 엔화 하락이 지속될 경우 중국의 위안(元)화 등 아시아 각국 통화의 연쇄적인 하락사태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때 이후 엔화는 강세 기조로 반전, 지난해 8월 이후 현재까지 달러에 대해 32%나 치솟았다. 이는 일본의 인접국가들에겐 도움을 줬지만 일본의 내부적인 문제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엔화 강세에 따른 소비자 물가의 하락은 곧바로 실질금리 상승을 초래, 이른바 「유동성 함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또한 일본 기업들의 수출환경을 크게 악화시켜 당분간 경기침체를 벗어나긴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만약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라면 이같은 사태를 결코 방치해선 안된다. 특히 지금처럼 현실적으로 정책적 대안이 충분한 상태에선 더욱 절실한 일이다.
지난해 일본의 통화증가율은 불과 4.5%에 그쳤다. 일본 중앙은행은 달러와 국채 매입을 통해 격차를 메우는데 급급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엔화 급등과 국채가격 폭락을 초래했을 뿐이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이번 주 유럽지역을 순방중이다. 그의 목적은 단한가지다. 달러, 유로, 엔화 등 3극 통화체제를 구축해 엔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부치 총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일본 경제가 개선돼야만 엔화의 역할이 한층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엔화가 지금처럼 상승세를 지속한다면 이같은 기대는 결코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 당장 엔화 오름세에 저지선을 설정해야 한다. 비록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1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