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고속철 문책 본때를(사설)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총체적 부실이었음이 재삼 확인됐다. 그동안 어물어물해오던 고속철도 건설공단이 졸속 계획, 사전조사 소홀, 설계부실 등 원초적 부실을 뒤늦게 「고백」한 것이다.경부고속철도가 통과하는 구간 주변에는 이미 밝혀진 상리 조남 터널말고도 29개의 폐광과 4개의 자연동굴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4곳은 고속철 노선 50m 이내에 위치해서 붕괴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같은 위험요소도 모른 채 설계를 하고 공사를 벌였다니 경부고속철도사업은 그야말로 장님에게 맡긴 꼴이나 다름없다. 지반 기초 조사 같은 사전조사를 제대로 안한 데다가 기술도 경험도 없어 설계부실까지 이어졌으니 처음부터 「어린이들 까치집짓기 놀이」를 했던 것이다. 서울∼대전간 11개 공구에서만 38차례나 설계변경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여기에 지역민원과 정치성 민원까지 끼여들어 노선변경이 잦았고 역사가 지상과 지하로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공기가 늦어져 10월 현재 9.7% 공정에 머물렀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24.1%에 이르렀어야 한다. 공기가 늦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업비도 엄청나게 더 들어가게 되었다. 기술과 능력이 부치면 남이 해놓은 것을 보고 배우기나 할 일이지 되지도 않게 졸속으로 추진해서 「부실 왕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국민에게 불안과 불신을 보태주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을 이 지경으로 저질러놓은 책임을 엄히 묻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졸속과 부실로 4년을 허송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책임, 부실을 땜질 식으로 넘어가려 한 책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책임들을 낱낱이 가려 문책의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고속철뿐 아니라 다른 국책사업도 부실을 막을 수 있고 국고를 헤프게 쓰지 못하게 예방할 수 있다. 그런 다음 기초 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계획대로 완공하기는 틀렸다. 늦은 공사라면 후세에 오래 기억될 만큼 안전하고 아름다운 고속철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