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말로만 '교황 리더십' 부르짖는 정치권




여야가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첫날인 14일 일제히 교황의 리더십을 본받자고 나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교황의 뜻을 본받아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교황께서 인명경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있고 분단의 아픔이 70년 넘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지는 광복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공자님 말씀이다. 하지만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은 정치권에서 내팽개쳐진 게 작금의 상황이다. 여야는 김영란법과 유병언법, 경제활성화법 등 어느 것 하나 100일 넘게 통과시키지 못한 채 입법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오죽했으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 불임국회를 응징하거나 아예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말이 일부에서 나오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침체와 양극화 심화, 부패, 무한경쟁, 녹록지 않은 대외환경, 불신과 갈등의 늪에서 헤매는 남북관계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이런 때 꼭 필요한 게 대통령과 여야 리더 등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120일 넘도록 분열과 갈등, 편 가르기와 불통이라는 고질적인 병폐에 매몰돼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못해 국가를 효과적으로 리드하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성남 서울공항에 내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고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픔을 표시했다. 1984년과 1989년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5년 만에 한국 땅을 찾은 교황으로서 '평화와 치유'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교황은 현재 세대와 계급, 지역, 종교 등을 뛰어넘어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낡은 구두를 신고 생일에 노숙인을 초대하고 소년원에서 죄수들의 발을 닦아주고 발등에 입을 맞췄다. 반면 마피아 등 악의 무리에는 회개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의 리더십의 핵심은 겸손과 진심, 소통, 유머, 청빈, 정의를 바탕으로 한 공감과 감동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데 있다. 이번 방한에서 강제종군위안부 할머니나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환경미화원,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만나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천가톨릭대 신학과 교수인 차동엽 신부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기 위해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와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결정적인 한 수를 둘 줄 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권이 교황의 리더십을 실제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우리가 교황에게 바라는 것은 위로와 치유, 화해와 용서, 배려와 용기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곧 정치권에도 해당된다. "내 탓이오"라는 고해성사를 바탕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교황의 리더십을 입으로만 되뇌여서는 안 된다. /kb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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