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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5월 30일] 삶의 무게
한소라(서울화랑 관장)
제주도 고영우 화백의 그림을 보면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삶의 무게와 짐이라는 의미는 대체 뭘까. 마치 하루하루를 존재하고 삶을 영위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큰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혹은 큰 짐을 지고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각자 삶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5g의 짐을 진 사람, 500㎏의 짐을 진 사람, 100톤의 짐을 진 사람…. 각자의 짐은 운명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짐이 지워지면 사람들은 그 짐에 깔려 병이 들거나 죽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책임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짐을 지고 있는지 이 짐을 지고 가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혹은 도중에 이 짐을 놓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 짐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느 사장님은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고 가다가 설 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은 넘어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할 때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간다고 떼를 부릴 수도 있었고 아르바이트가 힘들다고 좀 쉬어야 겠어 하고 큰소리를 칠 수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면 고정적으로 나가는 살림살이의 비용이나 내가 돌보지 않을 때 방치될 나의 가족들, 혹은 동료들의 안위(?)가 떠올라 그 마음을 당장 접고 이 상태를 견뎌내야 한다.
그 짐의 크기와 무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삶을 영위하고 관심을 두는지, 또 자신의 영향력의 범위가 얼마만큼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적어도 회사 안에서는 사원보다 사장님의 무게가 더 무거운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무게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고 적어도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고, 성실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일 확률이 많으며 자신의 자유보다는 타인과의 의리 혹은 안위에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 무게에 '욕심'의 무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완벽주의'로 불리는 것인데 자신의 삶이 완결해지기를 바라는 욕심,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자신의 어깨 위 중력을 몇 배로 배가시킨다. 우리는 실수를 하고 비난을 받거나 모범이 되던 삶에서 지탄 받는 자의 삶으로 변할까봐 노심초사한다.
현대는 예전보다 기본적으로 져야 할 짐이 많아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눌려 지치고 포기하고 고꾸라진다. 짐을 내려놓을 수 없는 너무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짐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도 있다. 자신은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책임감과 마음의 가벼움, 어느 것이 상위의 가치일까. 그것에 대한 해답은 각자의 몫이다.
연이은 슬픈 소식으로 집단 우울증이 염려된는 요즘 자신의 짐의 무게는 몇 킬로그램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짐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예상보다 덜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또 이 짐이 정말 내 등 위에 올려진 것인지, 내 염려와 걱정의 허상이 만들어낸 무게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허락한다면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감정의 캔버스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짐을 조금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29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다. 이번 죽음은 정치적 견해는 차치하고라도 많은 이들에게 삶의 무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졌음에 틀림없다. 누구보다 많은 이들의 짐을 지고자 했던 고 노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빌며 이를 계기로 서로 짐을 나눠 드는 화해와 화합의 사회가 되고 스스로 짐의 무게에 눌려 쓰러지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빌어본다. 삼가 명복을 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