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앞줄 왼쪽)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밝힌‘강도론‘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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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이 폭발 일보 직전이다.
주로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 간 대리전 모습이 짙었던 세종시 공방전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 정면 설전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동안 ‘미생지신(尾生之信)’ 등 고사성어를 인용한 은유적 설전 수준이었던 세종시 수정안 공방전은 ‘강도’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등장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조짐이다.
박 전 대표는 10일 국회 본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이 전날 충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언급한 이른바 ‘강도론’ 발언 등을 겨냥해 “백번, 천번 맞는 얘기”라면서 “그런데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전날 충청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세계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기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며 “가장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강도론’ 발언은 지난 17대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박 전 대표와 친박 측을 두고 한 언급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박 전 대표는 또 이 대통령의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다”는 발언에 대해 “일 잘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의 ‘미생지신’ 설전이 ‘신뢰’와 ‘효율’을 둘러싼 가치 논쟁 성격이 짙다면 ‘강도론’과 ‘일꾼론’은 그야말로 ‘정국 주도권’을 염두에 둔 ‘리더십’ 논쟁 성격이 강하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언급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으로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여권 내부의 첨예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강도론 파장이 커지자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게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나라당 내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전날 ‘강도(强盜)론’ 발언 등을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비판한 데 대해 “누구를 겨냥한 발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대통령이 이날 오후2시께 강화도 해병2사단을 방문하고 청와대로 돌아와 참모들로부터 박 전 대표의 발언과 청와대 해명 등에 대한 전말을 보고 받은 뒤 “허허”하고 웃기만 했다고 전했다.
이 수석은 또 이 대통령이 충북도 업무보고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밀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지자체장들에게 일 잘하는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사실 정우택 지사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확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해 논의가 돼야지, 가공의 이야기를 끌어다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은 정치의 본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 대통령에 대한 친박계 인사들의 비판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마치 대단한 결기를 보이는 것처럼 하는 것도 매우 온당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친이계는 친박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정안 강행 추진과 국민투표 등의 여론몰이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친박계는 이 대통령의 강도론을 비판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두 열차가 충돌을 눈앞에 두고도 오히려 서로 가속 페달을 밟는 모양새다.
친이계인 이군현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 나와 “세종시 문제로 소모적 공방과 경쟁을 계속하기보다는 국민의 뜻을 한 번 물어 결정하는 것이 어떠냐"면서 수정안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연계를 거듭 제안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사가 이미 반영된 것인데 국민투표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 대통령의 ‘강도론’ 언급과 관련, “이 대통령이 양심이니, 국가백년대계니 하면서 세종시 원안을 뒤집어 싸움이 벌어진 것"이라며 "싸움을 걸어온 쪽이 싸움을 그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했다.
류근찬 원내대표도 “이 대통령이 충청도민과 야당, 세종시에 반대하는 국민을 강도로 몰아붙였다”며 “또 수정안이 추진되면 몇 가지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이 대통령이 충북도지사 사전 선거운동을 한 것이며 원안대로 되면 국물도 없다는 협박”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