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째 무주택 상태인 자영업자 최모(44) 씨는 오는 9월 시행될 ‘청약가점제’에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가 최근 실망감에 휩싸였다. 장기 무주택자에게 혜택이 많아지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청약저축 가입자인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10년 이상 무주택인 청약 예ㆍ부금 가입자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면서 그야말로 서민들이 가입하는 청약저축은 무주택 5년이든 15년이든 똑같이 취급한다니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일 건설교통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청약가점제 시행으로 청약저축 가입자 중 장기 무주택자들이 청약예ㆍ부금 가입자에 비해 ‘역차별’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약가점제 하에서는 청약예ㆍ부금에 가입한 10년 이상 장기 무주택자들이 주택 청약에서 크게 유리해지는 반면 청약저축 장기 무주택자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표된 청약가점제 가안을 보면 가점제 총점 535점 중 ‘무주택기간’이 160점으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ㆍ부금 가입자 중 10년 이상 무주택자는 5~10년 무주택자보다 32점, 3~5년 무주택자보다 64점이나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청약에서 한층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게다가 오는 29일 공식 발표될 정부안에서는 무주택 기간의 배점이 더 높아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약저축은 가입자의 무주택 기간이 10년이든 20년이든 관계없이 오로지 납입액에 따라 당첨자를 결정하는 구조로 돼 있다. 다만 동일 순위에서 경쟁이 붙을 경우 5년 이상 무주택자끼리, 그 다음엔 3년 이상 무주택자끼리 우선 경쟁을 벌인다. 무주택 기간이 5년만 넘으면 10년 이상 무주택자와 똑 같은 청약자격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청약저축 장기 무주택자들이 예ㆍ부금에 비해 역차별을 받게 된 것은 정부가 지난해 청약가점제 도입방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청약저축은 현행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청약저축은 납입액에 따라 당첨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 가점제를 적용할 경우 큰 혼란과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중소형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청약저축의 취지를 감안할 때, 다른 부분은 손대지 않더라도 현행 3년, 5년에 더해 10년 이상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는 규정은 충분히 신설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한주택공사 주택공급처의 한 관계자는 “10년 이상 무주택인 청약저축 가입자에게 우선공급 자격을 주는 방안은 현행 제도에서도 아무런 혼란 없이 적용할 수 있다”며 “청약저축의 취지나 예ㆍ부금과의 형평성을 보더라도 장기 무주택자를 우대해 주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