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기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소형 MLCC. 와인 1잔 분량이 1억5,000만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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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연결기준 1,289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전분기 76억원의 적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한 셈이다.
지난 2월 글로벌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취임한 박종우 사장은 첫 사내 메시지를 띄웠다. "아무리 경영 여건이 어렵더라도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세계 최고의 삼성전기를 만드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삼성전기가 새 주력사업으로 삼은 분야에 대해 강한 드라이브가 걸렸다. 삼성전기의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는 이 제품은 휴대폰과 컴퓨터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자로, 전류가 일정하게 흐르도록 조절해주는 부품이다. 일반 휴대폰에는 성능에 따라 200~400개, LCD TV에는 700개 이상의 MLCC가 들어간다.
삼성전기는 MLCC에서 일본 경쟁업체들을 능가하는 가격 경쟁력과 품질로 이 분야에서만 매출을 40% 넘게 키웠다. 삼성전기는 이 분야에서 일본의 다이오유덴을 근소하게 따돌리고 처음으로 '빅3'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연말까지 점유율을 17~18%로 끌어올려 선두 무라타를 바짝 뒤쫓는 2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불황 속에서도 MLCC를 전략 제품으로 삼고 연구개발(R&D) 투자와 마케팅을 아끼지 않았다. 삼성전기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가로 0.6mm, 세로ㆍ두께 각각 0.3mm의 최소형 MLCC 개발에 성공했다. 성능은 기존 같은 크기보다 10배 높아졌다.
이 제품은 와인잔에 가득 채우면 1억5,000만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뛰어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 제품으로 극소형 초고용량 MLCC 분야에서 해외 경쟁사보다 1년 이상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LED(발광다이오드) 사업도 삼성전기의 강점이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와 5대 5 합작사인 삼성LED를 설립, 지분 50%를 갖고 있다. LED의 수익은 곧바로 삼성전기의 수익으로 연결된다. 삼성전자의 LED TV 성공과 글로벌 경쟁사들의 앞다툰 추격전 덕택에 TV용 LED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MLCC와 함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인쇄회로기판 부문 또한 1분기를 바닥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카메라모듈도 분기별로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캐시 카우(cash cow)'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삼성전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었다. 한국과 일본 시장에서는 "예전의 삼성전기가 아니다"라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국내외 증권사들은 삼성전기가 3~4분기에도 최대 실적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전문가는 "주력제품이 골고루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고 우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며 "삼성전기가 예전과 달리 강한 체질을 가진 기업으로 거듭났다"고 호평했다.
직원들의 근무 분위기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삼성전기는 올초부터 현장집중근무제를 도입해 특정 시간대에 현장인력의 작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오전 9~11시에는 현장인력 대상 회의나 행사가 금지되고 본사에서 현장 인력을 호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생산관련 회의는 현장에서 곧바로 실시하고 있으며 자료를 사전에 작성하는 행위도 없앴다.
고객사 확보를 위해 CEO부터 발로 뛰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 계열사의 사장들 중에 가장 빈번하게 해외 출장을 나간다. B2B(기업간 거래)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현지 거래선 접촉과 관리가 B2C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기 측은 "매출과 이익 증대가 가능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신사업을 꾸준히 발굴, 육성할 것"이라며 "마라톤 선수의 자세로 새로운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