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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공약' 전성시대다. 정치판이 아니라 영화계 이야기다. 참여한 작품이 일정 성과를 거둘 경우 이색 행동을 한다는 약속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공약 하나쯤 없으면 정말 자신 없다는 표시로 여겨지고 있다.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열한시(감독 김현석)'의 주연배우인 최다니엘은 관객수가 1,100만을 넘을 경우 같이 출연한 김옥빈과 사귀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니 공약(公約)이지만 영화제목을 연계한 장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오프라인ㆍ온라인 막론하고 최다니엘ㆍ김옥빈 커플 가능성으로 시끌벅적하다. 같은 날 개봉하는 '창수(감독 이덕희)'도 맞장구를 쳤다. 임창정은 관객이 300만을 넘으면 팬들과 함께 1박2일 MT를 가겠다고 했다. "제 팬들이 1인당 20~30번까지 봐주신다고 했다. MT 가서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게 이유다.
최근 개봉되는 영화에 배우들의 공약은 통과의례다. '결혼전야(감독 홍지영ㆍ23일 현재 27만명)'의 이연희는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 해운대에서 막춤을 추겠다고 공약했고 '노브레싱(감독 조용선ㆍ44만명)'의 서인국 역시 500만명이면 생방송으로 수영대회를 하겠다고 했다. 앞서 '소녀(감독 최진성ㆍ2만명)'의 김윤혜는 100만일 경우 교복입고 관객과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겠다고 했다. 이들의 공약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공약 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이슈 꺼리를 생산하기 위해 공약을 내건다는 것이다. '쇼비즈니스'를 위해 배우와 관객이 동원된다는 점에서다. 물론 긍정적인 입장도 있다. 연예인들을 보다 친근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약이라는 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결정권은 관객에게 있다는 점에서다.
연예인 공약의 '원조'는 프로야구 SK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으로 본다. 그는 2007년 수석코치 재임 당시 홈구장인 인천문학구장에 만원관중이 들어차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뛰겠다고 '공약'했고 약속도 지켰다. 영화에서 '원조'는 하정우다. 그는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자연기자상을 수상하면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했고 결국 서울서 해남까지 577km를 걸었다. 당시 하정우는 국토종단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고 이것도 호평을 받았다. 이후 연예인 공약은 폭포처럼 쏟아지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웃자는 이벤트에서 점차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짓(감독 한종훈)'에 출연한 서태화는 관객 1,000만 돌파시 같이 호흡한 김희정과 결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관객은 2만3,000명에 그치고 영화는 막을 내렸다. '미스터고(감독 김용화ㆍ132만)'의 주연배우는 천만을 넘을 경우 집을 내놓고라도 관객과 술을 마시겠다고 했지만 역시 뻥이었다. 물론 실천한 경우도 많다. '감시자들(감독 김병서ㆍ550만)'의 정우성은 500만이 넘으면 500만번째 관객과 데이트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실천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처음 팬서비스 차원에서 시작된 공약이 흥미위주나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작품의 진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