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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집중분석]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정치변화의 아이콘… 검증 파고·정책 부재 한계 넘어야
유병온기자 rocinante@sed.co.kr
1995년 2월 서울 서초동 한판빌딩에서 안철수연구소를 창립한 뒤 고사를 지내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사진제공=안철수연구소
지난해 9월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서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대화하고 있다. /박서강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인 지난해 10월24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 지지의사를 밝힌 후 박 후보와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최흥수기자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를 방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서강기자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 열정·헌신 성공신화 더해져 불통 정치권 대안으로 부상
20~40대 젊은층에 큰 인기, 무위 행보에도 지지율 굳건
정치 현안에 극도로 말 아껴 유권자들 비전·철학 등 의문, 권력 의지 부족도 약점으로
정치 참여 시나리오 철저 침묵, 선거 앞둔 행보 초미의 관심
"안철수는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깃대에 깃발이 펄럭이며 날리는데 날리게 한 것이 바람이자 마음이며 풍도(風道)이자 심도(心道)다."
지난해 9월7일 경북 구미의 금오공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증권투자자로 유명한 '시골의사' 박경철씨가 한 말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이사에게 양보의 뜻을 밝힌 직후였다. 사실상 안 원장이 우리 정치의 전면에 나선 시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안 원장이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은 아니다. 서울시장 출마의 뜻을 밝힌 것도,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한 것도, 이후 재산 사회환원 계획을 밝힌 것도 나름의 정치적 행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최근에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를 직접 찾기도 했다.
안 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그의 존재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안 원장은 기존의 정치인과 달리 말을 매우 아낀다. 서울 용산구의 집 앞에 진을 친 기자들에게도, 공개석상에 참석해서도 의례적인 말 외에는 정치 현안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e메일을 주요 소통창구로 활용하는 점을 감안해 안 원장에게 수차례 e메일을 보냈지만 그는 '고맙습니다'라는 첫 답신을 끝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안철수연구소가 대신 확인한 e메일에는 항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같은 '무위(無爲)'의 행보에도 안철수 현상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의 말처럼 안철수 현상은 이미 우리 정치의 '현실'이 됐다.
◇ '안철수 현상' 시작되다
안 원장이 정치권에 전면 부상한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난 직후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오 시장 사퇴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지인들과의 지난해 9월 식사 자리에서 시장 출마의사를 밝혔던 게 기사화되면서부터다. 공개되지 않은 사석에서의 말 한마디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만든 것이다.
안 원장은 당시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일 자리는 아니다. 그것 때문에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분노한 적이 있다. 그게 발단이 돼 언론에서 앞서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본인의 입을 통해 처음 공개된 것이 아닌데다 서울시장이 공석이 된 것도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다.
안 원장은 이후 언론과 대중의 과도한 관심에 오히려 적잖이 당황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 스스로도 "미처 고민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가 앞서 나가 당혹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 내재됐던 국민 불만과 소통하다
안 원장의 등장은 우연적 요소가 강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와 이에 대한 응축된 국민 불만을 점화시켜면서 이후 놀라운 폭발력을 보였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하나의 사회현상이다. 안철수를 왜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50% 가까이 나온다. 반면 '정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는 질문에는 싸움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 변화에 대한 목마름이 안철수 현상에 잠재돼 있다."
안철수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세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다. 이들은 높은 등록금 때문에 '알바'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학생이기도 하고 취업난 때문에 불안정한 지위를 감수해야만 하는 '88만원 세대'이기도 하다. 또 계속된 경제난에 결혼을 늦추는 '비만(비혼 또는 만혼) 세대'라고도 불리며 한창 왕성히 일을 해야 할 나이에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사오정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과 불만이 현재의 정치권에서 불통되는 데서 오는 3불(불안∙불만∙불통)의 자신들이 해방구로 찾은 곳이 바로 '안철수'인 것이다.
◇ 헌신의 성공신화에 젊은층 공감
그 해방구가 '왜 안철수 인가'라는 의문에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맑은 생각과 열정과 헌신, 그만한 사람이 드물지 않느냐"고 말했다.
안 원장이 자신의 삶에서 보여준 성공의 과정(의사→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경영인→교수)과 거기서 볼 수 있는 열정, 무료 백신 배포와 최근의 사회환원 발표 등에서 보여지는 헌신 등에 대중은 열광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도하고 있는 청춘콘서트는 그가 삶에서 쌓아온 이런 스펙들이 불안∙불신∙불만에 가득 찬 젊은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호소하는 공간이 됐다.
◇ 새것과 낡은 것의 프레임을 만들다
안 원장이 올해 총∙대선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자신의 여러 정치 참여 시나리오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그는 최근 4∙11 총선에서 강남 출마설과 신당 창당설에 대해 "그럴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행보에 대한 침묵과 부인을 두고 '총선 불출마 후 대권 직행'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지만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 적극 관여한 한 인사의 말이다. "안 원장은 아직 정치인이 아니다. 또 그는 천성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이 필요한 말을 할 줄 모른다. 안 원장의 말에 통상의 정치적인 해석을 한 기사가 모두 틀린 게 이 때문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안 원장의 심경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도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이에 대해 "정치에 발을 들일 경우 진흙탕 싸움에서 버텨내야 할텐데 안 원장은 그것을 견뎌낼 각오가 돼 있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 원장의 정치에 참여하든 그렇지 않든 안 원장은 이미 현실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안 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것'과 '기존 정치체제는 낡은 것'이라는 프레임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당장 세대를 지칭하는 '2040세대 대 50대 이상', 정치적으로는 '반한나라당 대 한나라당'이라는 프레임으로 총선과 대선이 치러질 공산이 크다.
◇ 정치적 자산, 대안 부재의 한계를 노출하다
안 원장의 올해 대권 도전에 대해 여러 인사들은 그의 '권력의지' 부족과 정책적 대안 없음을 약점으로 지적한다.
양극화 등으로 고통 받는 세대와 계층과 소통하는 부분에서는 역량을 보여줬으나 대권과 이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시각이다.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이다. "안 원장이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예컨대 김정일 사후의 남북관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 등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건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 어떤 정책과 비전,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정치적 성과물이 없기 때문에 안 원장에 대한 정치 검증은 물론 그 주변 인물에 대한 검증 작업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지도가 현재처럼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 정치 현안과 정치 일정이 진행될수록 그의 정치적 자산 부재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약력 ▦1962년 2월 부산 ▦서울대 의학박사 ▦펜실베니아대 공학 석사 ▦펜실베이나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단국대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 ▦안철수연구소 창립, 대표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이사회의장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석좌교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현) ▦아름다운재단 이사(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현)
■안철수의 말말말
현재의 리더십은 대중이 선물로 주는 것
집권세력, 역사의 물결 역행… 대가 치러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말은 '희귀'하다. 특히 지난해 9월 청춘콘서트를 마친 후 그는 대중 접촉은 물론 언론 노출도 극도로 꺼리면서 과연 '그가 가진 생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일반의 의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도의 '신비주의'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으며 정치 참여에 대한 결정이 안 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됐던 안 원장의 화제의 말들을 모아 봤다.
▲"나의 성격이 병적일 정도로 완벽주의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005년)'라는 책에서)-그는 안철수연구소 최고경영자(CEO) 시절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면서 둘 모두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지쳤다. 결국 하나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성격은 그를 '모범생'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정치인으로서는 양면이 있다. 기계적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모범적 태도는 빛을 발할 수 있지만 사회적 가치충돌을 협상과 분배로 해결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경제는 동물원 구조다. 삼성∙LG∙SK 동물원이 있고 중소기업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 그 동물원의 동물이 될 수밖에 없다."(2011년 3월 관훈클럽 토론에서)-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으로 한국의 소프트 산업이 척박하다며 밝힌 말이다. 안 원장이 비교적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 경제민주화다. 재벌 위주의 정책이 경제구조를 왜곡시켰으며 또 이에 따라 파생한 불평등의 해소가 중요한 과제라고 여기고 있다.
▲"리더십은 대중이 리더에게 선물로 주는 것 같다."(2011년 6월 청춘콘서트에서)-과거의 리더십은 개인에게서 나왔는데 요즘의 리더십은 대중에게서 나온다며 이같이 밝혔다. 리더십에 대한 이 같은 수평적 의식은 상대적으로 권위주의적인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되며 ??은이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다.
▲"내가 생각할 때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다."(2011년 9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10∙26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한 후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며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일련의 일들이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우리의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련의 발언은 그가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한나라당뿐 아니라 야당까지 포함한 '기성 정치권' 전체를 부정한다는 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