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와 자율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관례적으로 치르던 행사가 있었다. 'OO부패척결결의대회'였다. 하지만 거창한 결의대회를 열었다고 해서 그 후 대한민국 사회에 부정부패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려오지 않는다.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또다시 정부와 언론을 중심으로 비슷한 의식구조와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온갖 이름의 새로운 규제 내용들이 해법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규제만 만들어내면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청와대와 정부가 벌써부터 핵심 국정과제인 규제완화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규제개혁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 안전이나 금융 건전성과 관련된 규제는 아예 규제완화 대상에서 빼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규제완화 과정에서 정부는 이미 기존의 등록규제 1만5,000건 중 10%를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침이 반영될 경우 그 가운데 어느 정도나 '새로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규제 가운데 안전이라는 이름과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이처럼 각종 안전규제를 강화할 경우 그런 흐름에 편승해 환경 및 사회규제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 것이고 규제와 통제는 마침내 시대정신으로 금의환향할 것이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런 경로를 밟아 만들어진 안전 매뉴얼은 무수히 많다.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다.

정작 우리의 문제는 규제 숫자가 아니다.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다 이익집단들에 의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규제를 많이 만들어놓고 그것을 이용해 퇴직관료 등이 낙하산으로 내려가고 안전관리도 적당히 해온 게 문제가 된 것"이며 "규제완화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한구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의 말이 옳다.

규제강화의 칼날이 번득일수록, 그리고 규제입법이 활발해질수록 공무원과 정치권은 다시금 고개를 쳐들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원인(遠因)을 제공했다는 퇴직관료와 이익집단의 결탁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안전규제를 아무리 강화한들 규제를 회피하고 범법을 저지르는 데 따른 편익이 비용을 훨씬 능가한다면 규제회피와 범법행위는 앞으로도 무한정 지속될 수밖에 없다. 죄와 벌이 제대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판에 규제만 탓한다고 나아질 것이 무엇인가.

2012년 승객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32명의 희생자를 낸 이탈리아 유람선 코스타콩코르디아호 선장에게는 징역 2,697년이 구형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이 1996년에 징역 7년6월을 선고받았다. 검찰의 구형도 아닌 선고였다. 역대 대형 재난 중 가장 높은 처벌수위라는 게 이렇다.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수련원 대표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오히려 법원의 관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대형 재난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규제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규제해야 할 영역은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이미 안전규제의 종류가 3,200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민간의 '자율적(自律的)' 준수 아니겠는가. 자율적이라는 말은 결코 방종을 뜻하지 않는다. 자율에는 엄연히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질 일을 회피하고 방기했을 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징벌이 가해지는 것이 자율의 진정한 개념이다.

한(漢)고조 유방(劉邦)의 '약법3장'이라도 정부가 그 안에 담긴 법의 정신을 제대로 수호할 의지가 있다면 사회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시황제의 진(秦)나라도 규제가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지키지 못할 규제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