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작품‘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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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작품‘청(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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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미술 1세대의 대표작가를 꼽으라면 김환기, 유영국, 이대원과 함께 임완규(1918~2003)를 빼 놓을 수 없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김환기ㆍ유영국에 이어 일본으로 유학,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그가 머물렀던 때 일본화단은 유럽 모더니즘이 유입되면서 이른바 ‘신감각’이 세를 형성하기 시작했던 시기. 임 화백은 한국 고유의 정신적 기반에 이 같은 외부 경향을 흡수했다.
이에 동년배 국내 화가들이 자연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자연추상으로 신사실파 계열을 형성했다면 그는 자유연상에 기반한 충동을 추상으로 표현한 ‘자유추상’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자신의 예술적 입지는 물론 한국 근현대미술의 지형을 더욱 풍부하게 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고(故) 임완규 화백의 유작전이 ‘추상미술 1세대, 임완규를 조명하다’라는 제목으로 8~21일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고인의 미술사적 족적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작품 80여점이 선보인다.
작가는 마블링 기법 등을 이용한 재료의 물성 표현이 탁월하다. 화면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효과로 자연스러운 추상화를 그려내는 동시에 치밀한 화면구성으로 전적으로 우연성에 맡기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1950년대 작품들은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과도기.
나비 혹은 여인을 연상케 하는 구상성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격자무늬 같은 사각형의 집합은 이후 선보일 추상성의 시작을 알린다. 1960년대 이후 그 작품 세계는 더욱 확고해 진다. 불규칙한 사각의 조합은 특정한 형상을 해체시키며 작가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보여준다.
타원형에서 발견한 ‘자연성’의 표현은 70년대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타원 안에 마블링 방법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그려냈다. 80년대로 넘어가면 거친 붓터치와 표현적인 요소가 강조되는데 우연성에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을 놓쳐선 안된다. 임완규는 90년대 중반 지병으로 붓을 놓기 전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후반기 작품은 수십년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고인은 1967~1984년까지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시 개막식에는 아들인 대한전선 임종욱 부회장 외 조각가 전뢰진 등 동료 원로작가들이 참석한다. (02)73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