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계기로 북핵 문제, 천안함 사태 등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동북아 힘의 균형에서 가장 큰 변수인 북한의 키를 쥐고 있었으며 최근까지도 북한 경제ㆍ물자 지원 등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한의 계산과는 무관하게 중국이 '천안함 사건' '6자회담 재개' 등 동북아 정세의 미묘한 영역에까지 핵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총리 방북, 올 초의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방북 등을 포함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양측 최고지도층의 회동은 북한보다 중국이 훨씬 큰 관심을 보여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차일피일 방중 일정을 미루던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방중을 결정한 것은 중국 측과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우선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점점 커지는 중국의 지렛대=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해왔던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 지원 등을 대가로 시차를 두고 북한을 6자회담으로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경우 동북아 정세에서 중국의 위상은 훨씬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실 북한이 거듭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해 내심 불쾌해 했다. 지난해 10월 원 총리가 방북했을 때 북한 측이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편한 관계를 키웠다. 양측의 밀고 당기기식 힘의 균형이 중국 측으로 기울어진 것은 북한의 경제난이 가장 큰 이유다. 북한은 최근 단행한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 빠진 경제가 빈사 상태로 치닫자 유일한 혈맹국인 중국의 경제원조가 절실해졌다. 이 상황에서 천안함 사태가 터지자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싸늘해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피폐 상태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중국의 경제원조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천안함 사태가 중국과의 연대 강화 필요성을 더욱 크게 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 간 연간 교역액은 27억달러로 북한 국내총생산(170억달러)의 15%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994년 김정일 집권 이후부터 중국은 북한에 식량ㆍ원유 등 필수품들을 공급해왔고 최근 들어서는 더욱더 지원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대북 전문가는 "남측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끊어도 사실 북한에는 효과가 별로 없다"며 "이는 중국이 북한의 경제 후원자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 달래서 6자회담 유도할 듯=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천안함 사태는 북한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6자회담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중국 측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국제사회에서 나타나지 않을 경우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며 남한은 물론 미국ㆍ일본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라는 당근과 함께 북한을 자연스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으로 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역시 한반도 비핵화가 궁극의 목적인 만큼 중국의 중재하에 적당한 선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지난 4월29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중국의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전화 통화에서 천안함 사태 진전과는 별도로 6자회담 재개 노력에 대해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또 낙후된 지린ㆍ헤이룽장 등 둥베이 3성 개발을 위해 북한과의 전략적 경제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동북의 창추ㆍ지린ㆍ투먼을 잇는 이른바 창지투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고 북한도 창지투와 연결되는 라진ㆍ선봉지구를 개혁 개방의 전초기지로 내세워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함께 북한과 중국 양측이 이들 경제개발지구에 대한 대규모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그랜드 딜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