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올해 3∼4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의 중심 인물로 알려진 이상열(李相悅) 당시 주불공사와 사건 가담.연루자 13명에게 사실 고백 등 협조를 간청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연합뉴스가 이날 입수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관련 인물 면담조사 결과'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올해 3월 전직 중정요원 12명에게, 4월에는 이란대사 등을 역임한 이 전 공사에게 국정원 고위 간부 명의로 각각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상열 대사님께'란 호칭으로 이 전 공사에 보낸 서한은 "국정원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털어버리지 않고서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살아 남을 수 없으며 미래도 개척할 수 없다"면서 '국정원 선배'로서 후배들의앞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결단을 호소하고 있다.
서한은 또 "국정원 조사에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국정원자체 조사활동에 대한 비난도 무릅써야한다"며 "조만간 결과를 밝혀야하는 만큼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부득이 대사님의 사건 연루 사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양해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서한은 "김형욱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유해를 찾아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사건 당시의 연수생들이 무척 괴로워하고 있는 바 이들을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 옛 상사로서의 도리라고 생각된다"며 이 전 공사의 용기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중정 연수생'은 국정원이 지난 6월 과거사 조사활동 중간발표에서 김형욱 납치.
살해 과정에 가담한 것으로 지목한 신현진(가명)씨와 이만수(가명)씨로 국정원은 두사람을 상대로 꾸준히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사체 유기 및 매장' 장소 등 사건의 열쇠가 되는 결정적인 내용은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국정원측은 전했다.
1979년 10월 프랑스에서 어학 연수중이었던 두 사람은 상부 지시로 김 전 부장납치 과정에 참여했으며 특히 신씨는 김 전 부장을 승용차에 태워 제3국인 2명이 김부장을 권총으로 살해한 현장 인근까지 차를 몰았던 핵심 인물로 진실위는 보고있다.
국정원이 이 전 공사와 다른 12명의 가담.연루자에게 보낸 서한은 "과거 의혹사건들에 대해 진실을 규명, 국정원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새롭게 회복하고 위상을 올바로 정립하여 국가안보와 국익수호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거 의혹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협조 서한을 보낸 인물가운데 일부는 진실위측의 설득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나 이 전 공사를 비롯한 일부 관련자들은 여전히 사건의 핵심에 접근할 수있는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위 관계자는 서한 발송 경위에 대해 "사건관련 자료만으로는 실체적 진실에접근할 수 없고 관련자 증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한 뒤 "그러나 이들은'정보기관 출신으로서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한다'는 일종의 윤리의식이나 책임감 등으로 무장돼 있어 설득하기가 힘든 상황이다"고 면담 조사의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