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국부 30조원 산업스파이에 노출
대부분 전ㆍ현직 직원 매수… 유출 지역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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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ㆍ검찰 1조3천억대 '국부유출' 차단
최첨단 휴대전화 회로도가 카자흐스탄의 한 업체로 유출되기 직전에 적발된 사건은 여전히 국내 산업계가 첨단 기술 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돼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모(34ㆍ구속)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핵심 기술 회로도 15장을 컴퓨터에 내려받아 출력한 뒤 회사 밖으로 갖고 나올 때까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훔친 회로도로 일확천금을 노린 이씨 등과 접촉했던 카자흐스탄의 N사가 중간에발을 빼지 않고 회로도를 적극 입수하려고 했다면 26억원이 들어간 핵심 기술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2년 반 동안 67건 적발…피해예상액만 85조원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감시하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와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경찰청등이다.
이들 기관은 점점 더 교묘하게 국내 핵심 기술에 접근하려는 산업스파이들과 매일 피를 말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휴대전화 회로도유출 시도 역시 국정원과 검찰의 공조로 미수에 그쳤다.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첨단기술 유출 시도 사건은 29건으로 피해 예상액만 35조5천억원에 달했다. 2004년에도 26건이 적발됐고, 피해 예상액은 32조9천억원이나 됐다.
산업기밀보호센터가 만들어진 2003년에는 10월부터 불과 3개월 동안 6건(피해예상액 13조9천억원)이 적발됐다.
올해 들어서도 이달까지 6건(피해예상액 3조9천억)이 적발되는 등 첨단기술을둘러싼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전체 67건 중 전ㆍ현직 직원이 연루된 게 62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전기전자와 정보통신 분야가 49건으로 압도적이었지만 생명공학(4건), 정밀기계(6건), 정밀화학(3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범죄가 이뤄졌다.
◇ 영업비밀 보호 세심한 주의 필요
검찰은 기술 유출 범죄가 내부 핵심 연구인력이 관여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번 회로도 유출 시도 역시 금전 문제로 고심하던 해당 분야 선임 연구원이 관여돼 있었다.
구속된 연구원은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휴대전화 생산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부 동료 직원을 끌어들이려고 동업할 의향이 있는지 넌지시 떠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특허출원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극비로 관리하는 회로도지만 연구원들이 연구 목적으로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는 건 문제삼을 수 없다. 이번 건 역시 유출 전까지 의심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고 말했다.
회로도 사본 2장은 이씨가 카자흐스탄인에게 전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N사로넘어가기 전에 회수할 수 있었다.
유출에서 사본 전달까지 한달 가까운 기간에 제조업체에서는 유출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사내동호회에서 알게 된 전ㆍ현직 연구원들이 스마트폰 회로도와 소스코드를 중국으로 빼돌리려다 2명이 구속된 사건이 있었고, 7월에도 반도체제조공정 관련 기술을 빼돌린 전직 연구원 등 5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검찰은 중국, 대만 등에 한정돼 있던 기술유출 대상 지역도 최근에는 브라질,러시아, 인도 등 이른바 `BRICs' 지역과 동구권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대비가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입력시간 : 2006/03/22 0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