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박노상 한국화학연구소 연구팀장비마약성 진통제 '캡사바닐'개발
박노상(朴魯祥·51)박사는 세미나에 갈때마다 반드시 갖고가는게 있다.
조선후기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의「대장간」그림이다. 그림 애호가여서가 아니다. 그 의미를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대장간 그림은 협동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망치를 든 대장장이, 풀무질하는 소년, 쇠집게를 든 사람 등 모두 무쇠라는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땀흘리는 모습이죠.』
그는 신약의 개발도 이같은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수학, 물리학, 약리학 등 수많은 학문을 바탕으로 연구원들의 노력과 아이디어만이 하나의 신약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朴박사는 새로운 비마약성 진통제인 「캡사바닐」을 개발한 것도 연구원들과 협동을 통해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화학연구소 중추신경계연구팀장을 맡으면서 신약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82년. 신약개발은 10만분의 1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한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 1개의 가능성을 찾기위해 9만9,999개를 솎아내야 한다는 뜻. 다시말해 인내와 노력과 돈이 필요한 작업이다.
朴박사 연구팀이 이렇게 힘든 신약을 개발한 것은 그의 뚝심과 연구에 대한 열정의 결과라고 주위사람들은 평한다. 캡사바닐의 연구는 초기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가 중추신경계와 관련된 신약개발에 나설때 주위에서는 가능성 없는 연구라고 말했다. 연구비는 턱없이 모자랐고 마땅히 참고할만한 국내외 연구결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목표만을 보고 밀어부쳤다.
기존의 마약성 진통제들이 가지는 습관성, 탐닉성 등 부작용과 비마약성 약품들의 국소적인 진통 효과만을 보이는 문제점을 해결할 새로운 신약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중추신경계와 관련된 국내외 연구가 정립되지 않았던 것도 단점이지만 장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약 선진국의 미진한 연구 분야를 빠른 시간안에 따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이었다.
연구팀은 1,500번의 실험 끝에 합성에 성공했다. 이 분야에서는 조기에 연구성과를 얻은 셈. 오직 다른 연구팀들이 생각해내지 못했던 분자구조의 변환을 통한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결과였다.
신약은 95년 국내에서 특허를 회득하고 미국, 유럽에 이어 최근 일본에서도 특허를 받았다. 그는 신약이 진통작용에서는 몰핀을 능가하고 마약성 부작용이 없는 전신용 진통제임을 강조한다.
흔히 사용하는 아스피린, 이부프로펜(IBUPROFEN)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들은 염증이나 통증을 억제하지만 진통작용이 약하고 작용범위도 국소적인 단점이 있다.
그는『많은 사람들이 국소적인 통증에서부터 외과수술후 통증, 말기암환자의 통증, 당뇨신경통, 대상포진, 류마티스신경통 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통증에 신약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초기 연구협력을 타진하기 위해 방문했던 머크, 글락소웰컴 등 외국 유수의 제약회사들도 반응이 냉랭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 회사들도 중추신경계 계통의 약품개발에 나서고 있다. 스위스 산도스社도 캡사이신의 분자구조 변환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중이다.
朴박사는 뇌졸중 예방, 치료제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치매등 생활의 질과 밀접한 분야이고 연구역사가 짧다는 점에서 개발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좀더 경쟁력 있는 신약연구를 위해서 산·학·연의 협조체제에 대한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국내 연구계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협력관계가 아닌 경쟁 관계라는 지적이다. 대장간의 협동을 되짚어 봐야할 대목이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약력 48년생
72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사
78년 〃 대학원 약학과 박사과정 이수
82년 독일 함부르크대학 약화학연구소 이학박사
82년 한국화학연구소 중추신경계연구팀장
95년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98∼99년 대한약학회 학술위원장
2000년 대한화학회 부회장
입력시간 2000/07/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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