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 못잡는 세계 금융시장] '옐런 풋' 오나 안오나… 글로벌증시, 연준과 치킨게임

러 악재·유가 급락에도 뉴욕증시 고공행진
美국채·외환시장은 조기 금리인상에 대비
연준 '깜짝인상'땐 세계증시 대혼란 우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출구전략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연준과 글로벌 주식시장 사이의 치킨게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증시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러시아 루블화 가치 폭락, 유가 급락 등 각종 악재에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을 말한다.

반면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임금 인상, 인플레이션율 등 미 경제 회복세가 빠를 경우 조기 긴축 신호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연준 인사들은 주가 급락을 막기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 시점이 기대에 어긋날 경우 글로벌 증시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옐런 비둘기 메시지만 보는 증시=지난 8~12일 국제 유가가 10%나 급락한 여파로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3.5%나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주에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가 주간 기준으로 2년 만에 최고의 상승 폭을 기록했다. 옐런 의장이 17일 "유가 하락은 전반적으로 미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하락 압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탓이다.

특히 옐런 의장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인내심을 가질 것(be patient)"이라며 "새 가이던스는 상당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던 기존 성명서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증시는 연준의 비둘기적 메시지만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취약한 만큼 이른바 '옐런 풋'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연준은 S&P 500지수가 2010년, 2011년 각각 11%, 16% 폭락했을 때 양적완화 등의 통화 부양책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미 경기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탄탄하다지만 지뢰밭도 널려 있는 실정이다. 유가 하락이 대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재정 수입 감소의 여파로 미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며 "이는 미 시장 금리의 상승을 불러와 미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야누스로 자리를 옮긴 빌 그로스 전 핌코 최고운용책임자(CIO)도 "국제 유가 폭락에 따라 연준이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유가 하락이 연준의 긴축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신흥국시장 불안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전염될 경우 미 경제 역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FT는 "대부분의 투자가는 금리인상 시기가 다가올 때 금융시장이 반드시 혼란에 빠지면서 연준이 시장을 달래기 위해 인내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연준과 시장 간의 치킨 게임에서 시장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준 대 시장 누가 이기나=문제는 옐런 의장이 미 경기 회복세가 가파를 경우 금리 인상을 서두를 가능성도 열어뒀다는 점이다. 옐런 의장은 "앞으로 최소한 2차례의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핌코의 스콧 마더 매니저는 "주식 시장이 다소 자기만족에 도취돼 있다"며 "연준이 내년 여름이나 이르면 4월 중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옐런 의장은 "러시아 사태로 수많은 변동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 경제 전망에는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연준의 통화정책은 미 경제에 초점을 맞출 뿐 대외 악재는 변수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국채·외환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상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투자가들은 올 들어 10월까지 해외 채권을 940억달러 순매도했다. 자금이 미국으로 U턴하면서 미 국채와 나머지 주요7개국(G7) 간의 수익률 스프레드도 8년래 최대 폭으로 벌어졌다.

더구나 연준은 금융시장의 혼조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옐런 의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 연준의 금리 인상은 더 느리고 조심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자산 가격이 미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경우 주가 급락을 막기 위해 연준의 풋 같은 것은 없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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