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懲毖錄을 떠올리며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내며 국난 극복에 나섰던 류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을 읽으면 조선조 제14대 선조가 무능한 임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선조는 왜란을 당해 한번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앞장서서 서울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갔고 만주로 행궁을 옮기려다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는 바람에 의주에서 발길을 멈췄다. 명군이 남하하며 왜군을 패퇴시키자 선조는 그동안의 비겁함을 덮으려는듯 누구보다 강경하게 주전론을 펼쳤다. 그 와중에 명장 이순신을 옥에 가두는 실책을 저지른다. 집권세력이었던 사대부들은 우왕좌왕 제 살 길 찾기에만 급급했고 무신들은 적이 오기도 전에 성을 송두리째 내놓고 도망갔다. 그 결과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고 죽은 어미의 젖을 빨다가 함께 죽어간 어린이가 부지기수였다고 징비록은 전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맞아 지도자들은 때로는 무지와 비겁함에, 때론 흥분과 분노에 휩싸여 사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일쑤다. 임진왜란 때 그랬고, 병자호란, 구한말에도 그랬다. 북한이 9일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마침내 국제사회가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그들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한국사람들은 북한이 설마 그럴 수 있느냐며 당황함과 흥분, 분노의 감정으로 뒤엉켜 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안이하게 북한을 바라보고 무언가 기대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북한 핵실험 소식을 접한 우리는 임진왜란 때처럼 대비하지 못하다가 허둥대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어쩌면 한반도는 600년 만에, 또는 100년 만에 아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에 높아지는 무력 충돌의 기운을 삭이고 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의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지도자들이 이 고난도의 함수관계를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이 숙제는 조선조 선조나, 인조, 고종 때의 그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난제를 풀기 앞서 우리는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동정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따듯하게 품어줘야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북한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그들은 나긋나긋한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수백만명의 인명을 담보로 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려는 저의를 드러낸 이상 북한에 대해 우리의 힘과 의지를 보여주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우선 미국과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고립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배기찬 교수는 한반도의 운명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과의 역학적 관계에서 규명했지만 북한 핵무장 해제를 위해서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공동보조를 이끌어낼 충분한 여건이 돼 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가 확산되면서 경제적 압력이 때때로 군사적 압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핵개발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했던 옛 소련은 경제 파탄으로 와해됐고 98년 러시아는 미국 자본가들이 러시아 국채 발행을 포기하는 바람에 파산한 적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성공이라고 자평할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경제 파탄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야 한다. 그 와중에 당장에 북핵 리스크가 높아질지 모르지만 우방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때 그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다. 대북 경제협력이 당분간 위축될 수 있지만 북한을 고립에서 탈출시키려면 대국적인 견지에서 바둑을 둘 필요가 있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후세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멀게는 600년 전, 가깝게는 100년 전의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