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세율 인상을 앞두고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빠진 일본에서 때아닌 '골드 러시'가 일고 있다. 세율 인상 이후의 인플레이션 우려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경기침체에 대한 방패막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본의 대형 보석상들에는 골드바를 사려는 이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니혼게이자이신문 영문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다음달 1일 소비세율 인상을 앞두고 금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의 유명 보석업체인 다나카귀금속 긴자점에는 최근 들어 평균 하루 100명의 고객들이 금괴를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하루에만 무려 150명이 몰려든 것으로 전해졌다. 다나카귀금속 관계자는 "올 3월 골드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80% 증가했다"며 "가게가 문을 연 지 약 120년 만에 가장 바쁜 3월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의 귀금속 도매업체인 이시후쿠금속산업은 2월 대비 이달 귀금속 판매가 60%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도쿄 상품거래소의 금선물거래에서도 현금보다는 현물로 청산 받으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금선물 현물결제는 2.563톤으로 1년 전에 비해 4.4배 증가했으며 2월물의 경우 청산일에 실물로 지급된 규모가 전년보다 2.9배 증가한 2.389톤에 달했다.
이같이 금을 손에 쥐려는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우선 당장 증가하는 세금만큼 단기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값 변동이 없다는 가정하에 소비세율이 기존 5%에서 8%로 오르면 다음달 1일을 전후해 금 매매를 통해 3% 만큼의 이익을 앉아서 챙길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내년 10월 소비세를 10%까지 추가로 올릴 겨우 차익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율 인상 이후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방패 역할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일본이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FT는 "경제전문가들조차 일본 경제가 소비세 인상을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며 "1997년 소비세 인상 이후 깊은 장기침체에 빠진 전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국제금시세가 크게 하락하면서 개인들의 금 보유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금 사재기 열풍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일본이 소비세를 도입한 1989년 4월과 세율을 올린 1997년 4월 직전에도 금 사재기 바람이 일면서 일본의 금 수입량이 급증했으나 세제 도입 및 세율조정 이후에는 수입량이 급감했다. 당시 소비세 인상 전 한 분기 동안 금 수입량은 전 분기 대비 각각 27%, 94% 증가했으나 그 직후에는 각각 55%, 29% 줄었다. 닛케이는 "국제금시세가 상승할수록 구매의욕이 떨어진다"며 "소비세 인상 이후 금 수입 확대 여부는 국제금시세에 달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