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에 담긴 인생, X-레이필름에 깃든 희망

학고재갤러리 황란ㆍ한기창 전시 나란히 개막 7월11일까지

현대미술가의 기발함은 ‘재료와 표현의 한계’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돌ㆍ청동으로 조각을 만드는 기존 미술가들의 작업과 달리 단추와 X-레이 필름을 재료로 작업하는 작가 두 명이 나란히 개인전을 열고 있다. ◇단추와 핀에 인생을 꽂았다=소격동 학고재 본관. 전시장 한쪽 벽에 홍매(紅梅)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빛의 각도가 변화할 수록 작품의 표정이 달라진다. 살펴보니 붉은 꽃과 검은 줄기는 ‘단추’가 모여 형상을 이뤘다. 가는 핀이 수천 수만 개의 단추를 각각 고정시키고 있다. 실과 단추, 핀과 구슬로 작업하는 작가 황란은 원래 회화작가였다. 1997년 뒤늦게 떠난 뉴욕 유학 중 생계를 위해 패션업계에서 일한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다. 주변에 널려 있는 실과 단추, 핀과 구슬을 보며 실험적 시도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단추나 구슬을 핀으로 박아 점묘화 기법으로 형상을 표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살아남기 위해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고 구슬 하나 단추 하나에 보통 사람의 의미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날아오르는 새, 화사하게 핀 꽃 등 황란의 작품은 화려하다. 하지만 단추 하나하나를 원하는 색깔로 염색하고 망치로 일일이 박는 작업 속에 손톱의 피멍은 가실 날이 없다. 화려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X-레이 필름에 피춘 삶과 희망=기운 찬 움직임을 막 시작하려는 말의 형상 사이로 ‘손가락 뼈’가 언뜻 보인다. 활짝 핀 꽃들 사이로 ‘갈비뼈’도 보인다. X-레이 필름과 다른 이미지가 결합해 만들어진 작품인 탓이다. 학고재 신관에서 전시중인 작가 한기창은 한국화를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1993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전신깁스를 한 채 병원에만 갇혀 지내야 했던 작가는 병원에서 본 X-레이 필름이 그림같다고 느껴 필름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뼈를 찍은 X-레이 필름으로 사람의 골격을 표현했다. 이후 '꽃'으로 눈을 돌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섰던 나에게 피었다가 지는 꽃은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 것이죠.”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하던 작가는 신작에서 화려한 색색으로 변하는 LED를 이용했고 어둠과 공포의 느낌이 줄어들었다. 기존의 꽃 이미지에서 발전한 산수 풍경과 역동적인 말(馬) 이미지를 통해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야기 한다. 두 전시 모두 7월11일까지 계속된다. (02)739-4937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