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997년 11월21일 우리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수모를 겪으며 IMF가 주도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었다. 국가파산이라는 충격 속에 범국민적인 금ㆍ달러모으기운동 등 각고의 노력으로 4년이 채 안 된 2001년 8월 IMF 관리체제를 완전히 졸업했다.
외환위기에 따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는 30대 재벌그룹 가운데 16개가 해체되고 은행ㆍ투자금융 등 수많은 금융회사가 문을 닫은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산한 기업과 은행들은 외국자본 손에 속속 넘어갔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양산되는 가운데 가정이 붕괴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아픔도 컸지만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수익성이 좋아지는 등 재무구조가 매우 건전해졌다. 연간 수출액은 3,0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도 2,600억달러를 웃돌아 세계 4위에 이를 정도가 됐다. 주식시장에서는 더 이상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는 환란(換亂) 때와 판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질적 성장과 안정성 못지않게 경제체질과 체력까지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다. 환란의 원인이었던 경제의 고비용ㆍ저효율 구조는 여전하고 단기외채도 다시 급증하고 있다. 대립적인 노사관계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진 것은 큰 손실이다.
기업경영이 보수화되면서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수년째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부족해 희망을 잃고 있다. 중ㆍ장년 세대는 비정규직이라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대의 복지인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다 보니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사회 전반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과도한 정부 규제를 줄이고 기업가정신 고취와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