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의 사이비 시장개방
문성진 hnsj@sed.co.kr
중국 베이징(北京)에 주재하고 있는 H상사의 K부장은 지난주 상하이(上海)로 출장 짐을 꾸리면서 옷가지 사이에 현금 1만위안을 별도로 챙겼다. K부장은 한달 전 위안화를 중국 지방출장 길에 중국 지방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러 갔으나 한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결국 전산오류로 돈을 못 찾아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파견된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는 M과장은 한달 전 서울에서 달러화로 보내온 체재비를 한국계 은행 베이징 지점에서 위안화로 바꿨다. 그런데 100위안짜리 한장이 가짜 돈이었다. 이 지점은 "중국의 은행으로부터 철저한 위폐 감식과정을 거친 위안화를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중국의 은행에서 가짜 돈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은 중국의 한인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낙후된 중국의 금융시장이 오는 11일부터 전면 개방된다. 중국은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와 올해 말 이전에 외국에 금융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한 협정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외국계 은행에 위안화 소매영업을 허용하는 '외자은행 관리조례'를 발표했지만 내용을 보면 개방을 하겠다는 것인지, 문을 닫아 걸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조례는 금융시장을 개방은 하되 외자은행의 지점 또는 분점 형태로는 위안화 소매 영업을 할 수 없고 자본금 10억위안(약 1,200억원) 이상의 중국 현지법인으로 전환해야 하며 지점 형태로 남을 경우 100만위안 이상의 개인 정기예금만 취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아직 개방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을 열어야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규제장치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했겠지만 외국계 은행들은 "반쪽짜리 금융개방"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특히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은 외자은행들은 "이번에 발표된 조례는 중ㆍ소형 외자은행들의 소매금융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규제모자를 쓴 금융시장 개방"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외자은행들은 중ㆍ소형 은행들이 소매금융에 진입하지 못하게 된 것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씨티은행ㆍHSBCㆍ스탠더드차터드 등은 중국 현지법인으로 전환할 것을 즉각 선언하고 중국 금융시장 공략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니 베이징 금융가 일각에서 '반쪽 개방'이 낙후된 금융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빗장을 걸고 싶어하는 중국 정부와 시장을 독식하려는 외국계 대형은행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야합의 산물'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중국 금융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들만의 잔치'에 한국 은행들이 숟가락을 놓을 여지가 없어보여 안타깝다.
입력시간 : 2006/12/05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