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구조조정 왜곡] 정치논리 다시 기승

구조조정작업이 지역정서를 등에 없은 정치논리에 마구 휘둘려 뒤틀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한빛은행장 선임, 조흥_지방은행의 합병, 경남_부산은행 합병 추진, 평화은행 증자 등 부실은행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후속조치들이 정치논리와 지역정서에 휩싸여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거나 원칙없이 처리되고 있다. 이에따라 외환위기에 빠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구조개혁에 앞섰다는 이유만으로 회복기미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국제신인도는 구조조정작업이 이처럼 뒤틀릴 경우 다시 주저앉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17일 『5개은행을 퇴출시킨 이후에는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실물경제 붕괴를 우려해 경기부양에 뛰어들고 올해중 5대재벌 개혁의 골격을 마련하기위해 힘을 쏟으면서 은행이 구조조정의 사각지대로 방치되는가 하면 구조조정 원칙도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흥+2개지방은행 합병원칙 힘빠진다= 정부는 조흥은행과 강원은행의 합병에 앞서 조흥은행에 정부의 증자참여등 모두 2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당초 조흥은행이 부실 지방은행과 합병할 경우에는 적어도 2개 지방은행과 합병해야 공적자금지원이 가능하다는 정부방침과 어긋나는 내용이다. 정부는 조흥은행과 1개 지방은행과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가 없어 공적자금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며 조흥_강원_충북 3개은행 합병 성사를 고집해왔었다. 금감위 당국자는 뒤늦게 원칙을 후퇴한 이유로 구체적인 설명없이 『당시와는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합병을 반대하며 독자생존을 고집하는 충북은행을 원칙대로 처리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것을 의식해 발빼기를 시작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공동여당인 자민련의 근거지인 충청도에서 충청은행을 퇴출시킨데 이어 다시 충북은행마저 강제합병시킬 경우 정치적 압력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병은행의 본점을 대전으로 옮겨 정치권의 반발과 지역정서를 무마하기로 했으나 이를 통해서도 충북은행과의 합병이 여의치 않을 경우 조흥은행 정상화를 위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을 미리 열어놓자는 결과나 다름없다. ◇은행장선임 구시대로 돌아가나= 은행 구조조정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한빛은행은 행장 인선문제로 구조조정의 후퇴를 증거하는 상징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당초 이달초까지 은행장 선임을 마무리지을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18일에야 은행장 선임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한빛은행장 선임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특정 대주주의 인사 개입과 대주주간의 이견때문』이라고 잘라말했다. 이 당국자는 현정권의 공동주주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중 어느 일방이 행장선임에 압력을 가하고 있고 다른 쪽은 인사불개입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빛은행장 인선이 늦어지는 이유가 바로 정치권 압력때문이라는 세간의 관측을 뒷받침해주는 발언이다. 금융계에서는 초대 행장후보로 유력한 배찬병(배贊柄·충남) 상업은행장대행과 신동혁(申東爀·전남) 한일은행장대행의 지역연고를 둘러싸고 한빛은행장선입이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힘겨루기로 변질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정치권이 은행장 인사에 개입하고 이를 통해 대출에 간여한 게 우리나라를 IMF체제로 몰아넣은 핵심요인이다』면서 『자산규모 100조원대의 국내 최대은행으로 탄생하는 한빛은행의 행장 인사가 정치권의 개입으로 왜곡될 경우 금융 구조조정은 공염불』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고려에 따른 평화은행의 특권은행화= 코스닥시장에서는 최근 며칠동안 평화은행 주가가 상종가 행진을 지속했다. 정부가 금명간 증자참여를 결정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 『노사정 합의때 정부가 평화은행 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합의했고 평화은행의 자구노력을 고려할 때 증자참여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평화은행은 경영정상화 계획에서 약속한 1,200억원 규모의 증자를 실행하면서 거래선에 대한 강제할당 등으로 많은 물의를 빚었다. 또 IMF와의 합의에 따르면 부실은행 합병이나 외자유치때에 한해 정부가 증자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돼있다. 노동계의 협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칙이 무너질 때 형평성을 내세운 다른 은행들의 반발이 우려된다. ◇소지역주의에 따른 부산 경남은행 합병무산= 경영개선 권고조치를 받은 부산 경남은행은 합병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증자를 통한 독자생존의 길을 걷고 있다. 실직을 우려한 양행 노조와 경영진의 반대에 겹쳐 부산과 마산지역의 상공인들이 합병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합병에 결사 반대하거나 일방의 흡수합병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금감위는 합병을 거절하게 됨에 따라 수천억원의 정부 증자지원이 불가능하게 됐고 증자에 따른 수조원의 대출여력이 함께 감소, 지역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위는 양은행의 경영여건상 1,000억원 규모의 증자로는 경영정상화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정서 등을 감안할 때 감독권을 행사해 강제합병을 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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