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로봇과 결혼하는 시대 온다"

영국 과학자 "완벽한 외모·성 능력 갖춘 안드로이드 등장"… 장애인등 결혼 포기했던 소외층에 "훌륭한 배우자감"… "사회적 규범·로봇 윤리등 미리 대책 마련 나서야" 주장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오는 2020년에 이 같은 당혹스런 가정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오는 2020년이 되면 '신랑 홍길동, 신부 KOR-500A'라고 쓰인 청첩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실제 성생활까지 가능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개발돼 인간과 로봇이 법적인 부부의 연을 맺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과학자는 심리학ㆍ사회학ㆍ로봇공학ㆍ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출간된 450여권의 전문서적을 분석,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쯤이면 로봇도 배우자들이 지녀야 할 모든 내ㆍ외적 조건을 완비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21세기형 피그말리온 그리스 신화를 보면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여인 조각상인 갈라테이아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면서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비록 신화 속 인물이기는 해도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또 결혼까지 성공한 역사상 첫 번째 남자다. 하지만 2020년이 되면 신화가 아닌 현실에서 21세기형 피그말리온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사랑에 빠지게 될 갈라테이아는 바로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는 우수한 전자두뇌와 인공피부를 갖춰 외관상 인간과 똑같아 보이는 첨단 로봇을 말한다. 사람이 기계인 로봇과 부부지연을 맺게 될 것이라는 이 당혹스러운 전망은 한 영국인 과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 출신의 인공지능 연구가인 데이비드 레비 박사가 그 주인공. 그는 심리학, 사회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HIC(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물질과학, 성(性)과학 등의 분야에서 발표된 450여권의 전문서적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현재의 로봇기술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이때쯤 어느 정도의 지능과 자율성ㆍ외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적 능력을 갖춘 안드로이드의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빼다 닮고 연예인을 능가하는 외모를 가졌다고 해서 친근감이나 우정이 아닌 사랑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레비 박사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 5년 내 로봇과의 섹스 실현 그는 그 근거로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과의 섹스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점을 든다. 매년 전세계에서 개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성인 인형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상황에서 성(性)산업계가 섹스로봇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 역시 이 첨단제품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레비 박사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거부감을 표명하겠지만 성인잡지에 로봇 파트너가 환상적이었다는 내용의 경험담 기사가 실리면 주문 전화가 쇄도할 것"이라며 "기술적 측면에서 안드로이드에 성 능력을 탑재하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 로봇 윤리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로봇연구네트워크(EURON)의 설립자 헨리크 크리스텐슨 박사도 지난 2006년 이와 비슷한 이유를 들며 향후 5년 내 로봇과 성생활을 즐기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사람은 안드로이드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레비 박사의 설명이다.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다각적으로 분석, 10여가지로 압축한 결과 이들 대다수가 인간과 로봇 사이에 작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것. ■ 가장 완벽한 이상형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동일한 성격ㆍ관심사를 가진 이성과 사랑에 빠진다. 어떤 이는 외모가 출중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사랑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로봇에 있어 외모와 성격은 기술적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배우자를 로봇으로 한정한다면 사실상 전세계 70억 인구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형과 결혼할 수도 있다. 레비 박사는 "집사 로봇, 가정부 로봇 등 로봇의 지능과 능력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더욱 개인적이고 은밀해지기 마련"이라며 "이상형의 성격과 외모, 성 능력을 겸비한 개인용 안드로이드가 보급될 경우 이들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인형, 애지중지하는 자동차 등 개인적으로 소중한 물건들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취급하는 인간의 심리현상을 고려할 때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져 부부지연을 맺게 될까. 물론 아니다. 레비 박사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로봇과의 결혼은 실제로 가능한지가 아니라 언제 시작될 지의 문제"라며 "하지만 그 대상자는 주로 정상적 결혼을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치료 불능의 신체적ㆍ정신적 장애자, 극도의 추남ㆍ추녀, 극단적 수줍음의 소유자 등 이성들과 평범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레비 박사는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이들에게 안드로이드는 더없이 완벽한 배우자"라고 주장한다. ■ 합법성, 그리고 사회적 허용 그의 예상이 적중해 로봇과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이 이를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해주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레비 박사는 낙관적이다. 사회학적ㆍ심리학적으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정짓는 행위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통념에 기초한 군중심리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레비 박사는 과거 우리가 동성 혹은 타 인종 간의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되돌아보라고 말한다. 그는 "100년 전 모든 미국인들은 동성애와 타 인종 간 결혼을 불결하다고 생각했고 법도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며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타 인종 간 결혼은 합법화된 지 50여년이 흘렀고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주(洲) 또한 이미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법과 사회적 인식은 시대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치로 로봇과의 결혼도 동성애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레비 박사는 로봇과의 결혼이 가장 먼저 합법화될 장소로 미국 매사추세츠주를 꼽는다. 2003년 미국 51개 주 중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도시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 다수의 첨단과학 연구시설들이 밀집해 있어 로봇에 대한 친밀감이 높은 곳이라는 게 이유다. 세계적 로봇 공학자인 미국 조지아공대의 로널드 아킨 교수도 "2050년 이전에 미국에서 로봇 결혼이 허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것이 로봇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로봇을 법적인 아내와 남편으로 맞으려는 몇몇 사람들의 도전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윤리적 도덕적 딜레마 이에 따라 레비 박사와 아킨 교수 등은 로봇이 한 가족의 일원으로 편입될지도 모를 미래 상황에 대비해 로봇의 의무와 권한을 규정하는 로봇 윤리, 그리고 로봇에 대한 사회적 처우 문제를 시급히 연구ㆍ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명 SF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주창한 '로봇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면 사람의 명령에 복종한다' '앞의 두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를 보호한다' 등 인간중심적 사고의 '로봇 3원칙' 정도로는 미래 사회가 상당한 윤리적ㆍ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례로 자동차를 운전하다 로봇을 치어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로봇이 누군가의 헌신적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나 남편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이는 분명 남의 자전거나 핸드폰을 부서뜨린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로봇을 사주는 것으로는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기에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킨 교수는 "로봇과의 결혼, 로봇과의 섹스는 기존의 사회규범과 상식을 밑바닥부터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사전에 충분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놓지 않을 경우 사회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