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6월12일] <1420> 경제 대처리즘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6월12일] 경제 대처리즘 권홍우 편집위원 1979년 6월12일, 영국 하원. 갓 출범한 마거릿 대처 정권의 첫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제프리 하후가 입을 열었다. '시장을 중시해 잘하는 기업에 더욱 많은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중략)…재정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이후 석 달이 채 못돼 기준금리를 연 12%에서 17%로 5%포인트나 올렸다. 전쟁을 제외하고 이토록 짧은 기간에 충격적인 통화정책을 쓴 것은 근대 이래 처음. 왜 그랬을까. 재정지출 과다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1976년 이래 물가상승세 속에서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성과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평가가 상존한다. 구조조정으로 경기회복의 바탕이 됐다는 긍정론의 저편에는 금융그룹만 살찌웠을 뿐 실업난과 경기침체를 심화시켰다는 부정론이 있다. 수치상으로는 엉망인 경제성적에도 대처 정권은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이후 불어 닥친 '애국 열풍'에 힘입어 장기집권 가도를 달렸다. 경제 대처리즘은 바다를 건넜다. 1979년 10월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들이댄 금리인상과 초긴축정책의 원전이 영국이다. '볼커 쿠데타'로 불리는 충격요법은 미국경제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지미 카터 대통령을 물리치고 당선되는 데도 기여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초긴축 4년여를 지나며 경제가 안정되자 일각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의 승리'라고 외쳤지만 과연 그럴까. 고금리의 후유증은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제3세계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1980년 4,3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던 109개 채무국들은 5년간 이자만도 3,260억달러를 물었다. 세계적 양극화 현상 심화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때부터 싹텄다는 시각도 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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