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계동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金모씨(56)는 『오픈프라이스제가 뭐냐』고 되물으며 『대형 유통업체들이 요즘 손님들을 빼앗아가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 판에 왜 번거로운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반면 E마트 구로점에서 만난 주부 林모씨(32·서울 양천구 목동)는 『할인점에는 특히 브랜드별로 제품의 포장단위가 다른 경우가 많아 그동안 가격을 비교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제는 판매대에 표시된 단위가격을 기준으로 한 눈에 브랜드별 가격비교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오픈 프라이스제는 한마디로 소비자 보호장치다. 유통업체간의 가격경쟁을 촉진시켜 가격의 획일화를 막는 한편 투명한 가격정보를 제공,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자는 것이 이 제도의 도입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픈 프라이스제가 오히려 제조업체간 또는 제조·유통업체간 담합을 촉발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부담스러운 가격경쟁을 피하기 위해 제조업체들이 상호 담합을 통해 납품가격을 제한하거나 유통업체들과 연대해 판매가격을 통제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산업자원부 김진봉(金鎭鳳) 사무관은 『도입 초기에는 담합의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필연적으로 벌어질 유통업체간 경쟁구도에서 담합의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설령 담합이 있다해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오픈 프라이스제가 투명거래상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는 현행 상거래 관행도 제도 정착에 걸림돌이다. 홍익대 김종석(金鐘奭·경제학)교수는 『오픈프라이스제는 주유소처럼 건전하고 투명한 유통망을 전제로 한다』며 『화장품·가전제품처럼 무자료거래가 많은 품목의 경우 오픈프라이스제는 상대적으로 싸게 팔 수 있는 무자료거래상들을 유리하게 만들기 때문에 탈세거래에 대한 단속과 규제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유통구조의 특성도 오픈프라이스제의 성공적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우리나라 의류판매 경로를 보면 제조업체가 백화점·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 매장에 입점해 있더라도 재고 및 판매관리를 스스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직판체제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의류제조업체는 대부분 영세하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는 유통업체가 판매가격을 붙이도록 한 오픈프라이스제도의 예외를 인정, 영세한 의류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제조업체가 판매가격을 붙이도록 허용했다.
결국 유통업체간 경쟁을 유도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오픈프라이스제도의 실시 배경이지만 가격인하의 기대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현재의 유통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다.
과대 판매가격 표시에 대한 규제도 고민거리다. 우리나라의 에누리 관행상 중소 유통업체들은 아무래도 표시가격보다 대부분 낮게 판매할게 뻔 한데 이를 마땅히 규제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당국도 이점을 인정한다.
오픈 프라이스제의 실시대상 품목의 숫자가 적은 것도 문제다. 권소가 표시금지와 단위가격 표시의무 품목이 각각 12개와 15개에 불과하다. 특히 반드시 단위가격을 표시해야 하는 대상도 백화점·할인점·쇼핑센터 등 200여 대형 유통업체로 제한, 동네슈퍼마켓 등 소형 영세점포들을 제외했다.
산업자원부측은 『현재 시·군·구별로 안내전단과 홍보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오픈 프라이스제 참여를 지도하고 있다』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거쳐 필요하다면 내년 초 소비자보호원 등과 연계해 보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구동본기자DB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