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의 북한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 그리고 경의선 연결 및 개성공단 착공에 대한 남북한간 합의 등 적어도 경제문제에 있어서 남북관계는 순조로워 보인다. 더욱이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와 응원단 파견에 이은 고위급 경제시찰단의 남한 산업현장 참관 등은 북한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지난 주 평양에서는 제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가 개최돼 그동안 합의됐던 사안의 진행 상황에 대해 점검하고 추후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이고 숨가쁘게 이뤄진 남북관계의 긍정적 발전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편에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이는 아마도 북한이 시인한 핵 개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고 북한 경제개혁의 청사진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행여 남쪽의 대선일정과 북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고려한 북한의 전술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우려이기도 하다. 더욱이 북한이 최근 추진해온 일련의 경제개혁 조치들은 아직 초보 수준의 정책변화에 그치고 있다. 가격과 임금인상조치 이후 공급부족으로 인한 인플레 및 암거래 확산의 압력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속적 개혁을 위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또한 신의주 특구를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나 특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조치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신의주 특구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성공단의 착공이나 관련 법안의 제정이 과연 잠재적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개혁과 개방은 험난한 길이다. 일련의 개혁조치만으로 손쉽게 성공한 사례는 없다. 중국의 경우에도 지속적인 개혁조치는 물론 홍콩과 타이완의 자본기술 유입과 해외 화교상권을 활용한 수출시장 확보 등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개혁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번에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선포한 것도 북한이 홍콩의 순기능에 눈뜨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전망이 불확실한 신의주 특구의 건설보다 남북경협의 발전을 통해 자본기술 해외시장을 확보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사실 경제개혁 개방과 핵 문제 야기라는 언뜻 모순된 북한의 변신은 북한지도부 인식의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아직도 협상을 통한 경제적 실리의 획득이라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사 핵을 협상카드화해 다소 경제실리를 얻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장기적으로 북한경제에 독약이 될 것이다. 지금 북한에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두려움이 아니라 북한 변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다. 핵 문제에서 보듯 북한의 한계성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에도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도쿄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회의에서는 북한 핵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압박수단을 강구하는 가운데 남북경협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실무적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입장이었다. 더욱이 북한이 핵 카드를 활용할 심산이라 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가장 유용한 통로인 경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이 가지고 있는 안전판 기능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문제는 어떻게 경제협력의 수단을 활용해 북한의 인식 변화와 경제개혁 후속조치를 유도할 것인가에 있다. 남북경협은 불가피하나 속도와 범위에 대해서는 조율이 필요하다. 북측이 마지못해 우리측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시혜(施惠)적 차원에서 합의하는 경협사업을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성공 가능성도 낮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의 자발적 의지와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바탕으로 남북경협이 이뤄질 때 비로소 안정적인 남북관계와 북한경제의 회생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한 남북경협의 추진은 북한 지도부의 인식 변화를 지연시킬 수도 있다. /오승렬<통일연구원 경협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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