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내 모든 남성들의 치마 착용을 금지한다. 어길 경우 6개월 징역에 처하고 두번째 위반하면 해외 식민지로 7년 이상 추방한다.’ 영국 의회가 1746년 8월1일 결의한 ‘치마금지령(Dress Act)’의 골자다. 법 제정의 목적은 스코틀랜드 저항운동 억압. 스튜어트 왕조 복원을 내걸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자코바이트파의 반란을 1746년 4월 완전히 진압한 후 고지대(스코틀랜드)의 모든 전통을 금지하며 이 법을 만들었다. 영국판 ‘내선일체(內鮮一體ㆍ일제의 조선동화정책)’였던 셈이다. 치마는 과연 고지대의 전통복색이었을까.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에 따르면 치마는 물론 씨족이나 가문을 구분하는 격자무늬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킬트(kilt)로 불리는 치마 자체도 스코틀랜드 노동자를 고용한 영국인 제철업자가 길고 거추장스러운 원피스 형태의 전통의상을 작업용으로 간편화한 발명품에 불과하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런 주장에 펄펄 뛰며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주장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치마금지령이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반영감정이 오히려 치마의 저변을 확대시켰다. 귀족 등 재산가들도 노동자들의 복장이라고 무시하던 치마를 애국심에서 입었다. 결국 영국은 36년 뒤인 1782년 금지령을 풀었다.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병사들이 치마를 입고 국왕 열병식을 치른 1822년부터는 ‘킬트 문화’는 완전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상인들의 판매전략에 따라 격자무늬 천도 정신 없이 팔려나갔다. 스코틀랜드의 치마 문화가 탄생한 지 300년이 채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만들어진 전통’만큼은 낯설지 않다. 개항 이후 서구를 따라잡은 일본의 제도와 문화 대부분이 ‘만들어진 전통’이다. 왕을 신성시하는 이른바 ‘천황제도’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