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색채] 단일표준 만든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에 들어가는 빨강은 한국의 전통색상인 「오방(五方)색」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빨강이 한국공업규격 KSCP 0072, 국제색표기 기준으로 통하는 먼셀(MUNSELL) 기호상 「6.0R 4.5/14」 색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태극문양의 빨강은 빨간색 중 순도(채도)가 가장 높은 색으로 순도가 낮은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 형광색이 첨가된 듯한 일본 일장기(日章旗)의 빨강과는 엄연히 색감이 다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태극기를 그릴 때 수백 가지 빨간색 중 아무 거나 쓰면서 정확한 색채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지난해말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태극기의 표준색도를 확정함으로써 색채 표준화의 중요성이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색채 표현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전자기술이 발달돼 카메라나 모니터의 색채해석 능력이 나날이 정교해지면서 자연광 아래 색상 표현에 가까워지는 추세다. 반면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색채의 분류·표준화작업을 시도하기는 커녕 그저 육안으로 비슷한 색상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업계에서조차 정확한 색채표기에 무관심해 색상분쟁과 무역 클레임을 적잖이 당한 게 저간의 사정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색채(色彩)를 기호화(표준화)하는 작업을 추진키로 했다. 산업자원부는 27일 고부가가치 디자인산업의 기초가 되는 색채를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산업색채 표준화, 산업색채 공동연구기반 구축,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자부는 올해 안으로 (재)한국색채연구소와 공동으로 플라스틱 색채 활용색 1,000가지를 개발, 표준화해 산업계에 보급키로 했다. 또 한국색채연구소가 이미 개발한 1,519개 도료표준과 2,135개 섬유색채표준도 전산업에 보급하고 오는 2000년까지 134억원을 투입, 산업색채 산·학·연공동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와 공동으로 벌이기로 했다. 오는 2001년까지는 한국유행색산업협회와 공동으로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산자부는 색채표준화가 완성되면 국제간 색상분쟁, 클레임이 줄어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유색상 개발로 수출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말에야 색채기호를 넣은 태극기를 처음 만들었을 정도로 색채표준화 부문에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은 지난 64년 도쿄올림픽에서 우리 태극기를 기호화된 색채로 만들어 사용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색채표준화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산업혁명에 버금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색채 표준화작업이 이루어지면 염색·직물·의류·디자인 등 기존산업뿐 아니라 멀티미디어·영상·그래픽·전자유통 등 첨단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관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동수(韓東洙) 한국색채연구소장은 『색채표준화작업이 마무리되고 표준화된 색채기준이 전업계에 보급될 경우 우리나라는 문자발명 이래 최대의 문화·산업적 사건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조정현(趙正鉉) 색채디자인연구소장은 『이제까지 우리 전통의 고유색채로 개발된 것은 겨우 90개 남짓』이라며 『색채야말로 최상의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이며 고유 색채개발 표준화는 국내산업의 고부가가치화,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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