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지족

18세기 몽테스키외·볼테르·루소 등과 「백과전서」를 함께 펴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그의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어느날 아는이에게서 화려한 서재용 가운을 선물받았다. 그러자 그동안 아무런 불편없이 사용해온 책상·액자·서고 등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서재의 집기들을 하나둘 바꿔갔고 결국은 가운 하나 때문에 서재를 다시 꾸미게 됐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과용했다는 이야기를 씁쓸히 표현한 것기다. 이같은 현상을 캐나다 학자 그랜트 매크레켄은 「문화와 소비」라는 그의 저서에서 「디드로 효과」(DEDROT EFFECT)라고 규정했다. 인간의 소비는 모든 점에서 문화적인 고려에 의해서 형성, 촉진되고 구속받는다는 가설이다. 이를 테면 BMW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허름한 라면가게를 찾는 일은 드물고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글을 쓴다는 것 또한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매크레켄의 이러한 논리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소비를 문화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요즘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경제적인 어두운 그늘은 「지나친 디드로 효과」가 원인(遠因)이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정부 통계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기록한 지난 84년 일본의 1인당 소비재 수입액은 49달러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달성했던 지난 95년 165달러로 일본보다 3.4배나 많았다. 소비자신용잔액도 90년대 들어 연평균 25.6%씩 늘어나 96년말 기준 85조4,000억원에 이르렀으며 개인가처분 소득에 대한 소비자신용 잔액비율도 90년의 18.3%에서 96년에는 44.9%로 높아졌다. 미래소득을 담보로 「우선 쓰고 보자」는 심리가 확산됐다는 얘기다. 그나마 지난해 24.3%까지 떨어졌던 총저축률이 올해는 IMF 한파에 따른 소비감소로 37.9%에 이르는 등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자신의 분수를 알라는 선인들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새삼스런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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