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때마침 단풍이 곱게 물든 강원도 숲 속 미술관 두 곳에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그림도 보고 가을 정취도 만끽하는 일석 이조 나들이에 나서 봄이 어떨까.
◇‘로병사(老病死)-다시 생(生)’ 춘천 이상원미술관
강원 춘천에서 지난 해 가을 문을 연 이상원미술관에서는 극사실적 인물화에 인간과 삶을 진솔하게 녹여온 이상원(80) 화백의 기획전 ‘로병사-다시 생’이 열리고 있다. 노년의 삶을 담은 인물화 연작 ‘동해인(東海人)’ 등 대형 인물화 40여 점이 선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성성한 백발에 주름이 깊게 팼다. 내리쬐는 햇볕에 반평생이 시달린 얼굴에는 거뭇한 검버섯이 만개했고, 불필요한 지방이라곤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마른 몸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럽다.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얼굴들에서 느껴지는 것은 삶의 고단함. 하지만 화백은 이후 다가올 이들의 삶의 끝에 다시 생을 놓았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를. ‘그림을 조금 알만 하니깐 가야 하는 게 아쉽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화백의 심경이 담긴 듯하다.
극장 영화 간판 그림과 주문 상업 초상화를 그리다가 불혹이 돼서야 순수미술로 전환한 독특한 이력의 화백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인물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예순이 넘은 후부터다. 주로 노인들만 그리는 이유로 “나이 든 사람이 이야기가 있고 재미가 있다”는 대답을 하는 화백은 요즘도 오전 6시면 일어나 춘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최근에는 닭을 주로 그리고 있다는 팔순 화백은 “그림에 변화가 왔으면 좋겠는데 변화가 쉽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033)255-9001.
◇‘판화, 다시 피다’ 원주 뮤지엄 SAN
강원 원주 지정면 오크밸리 내 자리잡은 뮤지엄 산(SAN)에서는 18일부터 다채로운 판화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판화, 다시 피다’를 열고 있다. 국내외 작가 41명의 판화 작품 113점을 판화 한국 미술·1920~1930년대(시대)·현대 미술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갈라 묶어 선보인다.
‘판화, 한국 미술로 피다’에서는 크라코프 국제판화트리엔날레 수상작 중 하나로 동판화의 한계를 넘어 이미지를 표현한 이영애의 작품, 예리한 기구로 동판에 직접 그림을 새기는 드라이 포인트 기법으로 새벽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낸 강승희의 작품 등 한국 중견 작가 20여 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판화, 시대로 피다’ 전에서는 1920~1930년대 한국을 탐방한 서양인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폴 자쿨레가 다색 목판으로 그 시대 한국 고유 풍속과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된다. ‘판화, 현대미술로 피다’에서는 앤디 워홀이나 데이비드 호크니 등 국제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전후(戰後) 국제 판화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아름다운 건축을 만날 수 있는 건 이 미술관을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곳곳에 자리 잡은 명품 조각과 설치 미술과 ‘빛과 공간의 마술사’로 불리는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도 눈을 황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