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로작가의 미술이론을 후배 화가들이 제각각 독특한 미학으로 재창조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서울 강남구 논현동 청작화랑(02~549-3112)에서 마련한 「99년 하모니즘 텐(TEN)전」이 그것으로 오는 26일 개막, 3월 17일까지 이어진다. 김흥수(80) 화백의 하모니즘을 주제로 김화백을 비롯해 구자승·김병종·오용길·이두식·이숙자·이왈종·장순업·장혜용·황주리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큐비즘·추상표현주의등 세계미술사를 풍미한 미술이론은 많다. 그러나 우리식의 현대적 조형언어는 무시되어오기 십상이었다. 김흥수(80) 화백이 지난 77년 미국에서 활동할 때 선언한 하모니즘(HARMONISM)도 마찬가지다. 우리 말로 바꾸면 조형주의(調型主義)라고 할 수 있는데,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면 분할 또는 색의 대비를 통해 구상과 추상을 병치시키는 하모니즘은 세계미술사를 둘로 나눠 도도하게 흘러오던 상반된 흐름의 변증법적인 통일을 꿈꾼다.
김 화백 자신의 표현을 빌리지면 『하모니즘이란 형식상으론 구상과 추상을 결합하는 거지만, 그 속에는 주관과 객관, 음과 양, 동양과 서양의 조화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화백의 하모니즘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화가 데이비드 살레의 활동이 계기가 됐다. 살레는 김 화백이 하모니즘을 발표할 때보다 4년 뒤인 81년에 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작업을 했는데, 미국에서는 그를 다원주의 즉 하모니즘적 화법의 창시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87년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하모니즘 창시의 선후를 바로잡아주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음양미학이 세계 화단에 인정을 받게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작가들 가운데는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일가를 이룬 구자승씨나 오로지 구상적인 한국화만을 고집해온 오용길씨등이 과감하게 추상의 세계를 연출한 측면이 돋보인다.
장순업·이왈종씨등은 김 화백의 면분할에 충실한 그림을 선보였고, 면분할이라는 형식보다는 구상과 추상의 결합 즉 음양의 조화라는 이치에 더 충실하려는 작가들도 있었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선배 화가가 이뤄온 화업에 대한 후배 작가들의 상찬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한국적 미학의 뿌리내림에 일군의 화가들이 뜻을 같이했다는 의미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이용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