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19를 구리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막상 두고 나면 너무도 쉬운 이 수, 10급짜리 하수도 볼 수 있는 이 수를 구리가 놓쳤던 것이다. 구리는 참고도1의 백1로 치중하면 다 잡는다고 읽고 있었다. 그러나 흑4의 장문으로 흑대마는 간단히 완생이 아닌가. 망연자실. 한참 넋을 놓고 있던 구리는 초읽기의 재촉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대충 계가를 해보니 아직 비관할 바둑 같지는 않았다. 그는 백20으로 끝내기를 서둘렀다. 검토실에서 계가를 해보던 양재호9단과 루이9단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이 좌변에서도 무난히 수습에 성공하고 우변의 대마까지 거뜬히 살렸으니 마땅히 흑승이 굳어졌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바둑은 반집승부였던 것이다. 문제는 실전보의 흑19를 미처 예측하지 못한 구리가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집중력에 손상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편 유창혁은 끝내기 단계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끝내기의 귀재인 이창호와 여러 차례 접전을 하면서 어느덧 유창혁도 끝내기의 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42가 패착이었다. 참고도2의 백1이하 3으로 두었더라면 백의 반집 승리였다. 157수 이하줄임 흑2집반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