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한 우당 이회영

■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우당 이회영(1867~1932)은 대대로 문벌이 높은 삼한갑족(三韓甲族) 출신이었다. 1 0대조 백사 이항복부터 영의정만 9명을 배출한 집안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명문가 기득권 세력의 자손이, 모든 인간의 절대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아나키스트로서 평생을 바쳤다는 것은 경이에 가까운 일이다. 책은 이회영이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을 바탕으로 어떻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는지를 조명했다. 1910년 일제의 강제 한일합방 체결 이후 국망의 위기가 닥치자 이회영은 전 재산을 정리한 다음 여섯 형제의 일가 40여명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 이 시기는 한일합방에 기여한 조선인, 즉 매국 사대부에게 일제가 작위와 은사금을 내린 두 달 뒤였다.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진짜 명문가의 남다른 행보였다. 망명한 이회영 일족은 극심한 가난으로 끼니를 못 잇고 굶은 채 누워 있었을 정도로 고생했다. 이회영은 헤이그 밀사파견을 주도했고, 고종의 국외 망명도 추진했다. 평생 교육사업과 항일무장투쟁에 매달렸고, 독립운동의 한 형태로서 아나키즘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생활고에 딸의 옷까지 팔아야 했을지언정,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하던 북경 유학생 심훈에게 직접 김치를 가져다 주는 자상함을 잊지 않았다. 만 65세 때 투쟁의 결의로 상해에서 출발하는 배 남창호 밑바닥에 몸을 실었으나 밀고로 대련 부두에서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인 저자는 우당의 삶을 통해 사회지도층 도덕 의식과 역할에 대해 되묻고 있다. 1만5,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