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로서는 이동통신사와의 융합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기회다. 하지만 솔직히 통신사에 잡아 먹히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하나카드가 SK텔레콤과의 자본제휴 협상을 타결한 지난 11일 한 대형 카드사 임원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던진 넋두리다.
카드사들은 최근 정보통신 등 이종산업 분야와의 결합을 통해 금융혁명에 가속페달을 밟았지만 내심 제휴파트너들의 압도적인 규모와 잠재력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올 상반기 국내 카드사들이 낸 당기순이익은 총 9,800억원선으로 국내 이동통신 3사(SK텔레콤ㆍKTㆍLG텔레콤)의 당기순이익(1조3,000억원선)에 못 미친다.
하지만 정작 카드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 같은 외형의 차이가 아니라 소프트파워의 차이다. 신금융산업을 이끌 인재와 기술ㆍ창의력의 격차를 걱정하는 것이다. 한 선발 카드사 간부는 "통신사는 기업문화가 개방적이고 창의적이어서 경영진과 직원 모두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카드사는 주로 리스크 관리와 발로 뛰는 영업에 중점을 둬온 탓에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 카드사들은 이미 지난 2000년 초반부터 이동통신산업과의 접점을 모색해왔지만 단발적인 시도로 그쳤거나 인재ㆍ투자비용 부족으로 진도를 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카드사 경영진도 카드대란 이후 리스크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안방을 지키려는 새가슴으로 전락했거나 모그룹 오너나 금융당국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사업 관행에 안주해 신사업의 호기가 와도 기회보다는 위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 카드산업은 서비스 수준과 내수시장 규모로 보면 세계 선두권이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업들을 자국 내 파트너로 두고 있다. 이런 훌륭한 내수시장을 갖추고도 우리 카드 산업 30여년간 왜 세계적인 기업이 없는지 경영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안주하지 마라. 도전하라. 소프트파워에 투자하라. 작은 이불 한 장을 서로 덮겠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모두 덮을 수 있는 '더 큰 새 이불'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 지금 카드사 경영진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