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와타나베 켄 주연 '내일의 기억' 망각의 슬픔 끌어안는 절제와 사랑 서필웅 기자 peterpig@sed.co.kr 관련기사 그림이 있는 공간의 풍요 "숨은 작품 발굴 나설 것" 좋은 그림 싸게 사는 법 [리빙 앤 조이 기사 보기] 피부관리 자외선 차단·보습이 우선 익숙산 코미디 스타에 의존 '못말리는 결혼' 와타나베 켄 주연 '내일의 기억' 케이블 TV, 지상파 향한 '거침없는 하이킥' 佛 여배우, 20여년간 1만 6,000명과 관계 우리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들을 붙잡고 산다.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 결혼, 아이의 탄생과 성장까지 소중했던 과거를 기억하며 우리들은 미소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이렇게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해 할 수도 없으며, 이런 기억에 기반해 만들어지는 가족, 친구들간의 깊은 관계 역시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내일의 기억’은 이런 절절한 불행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중년 샐러리맨 사에키(와타나베 켄)는 자신이 다니던 광고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았고, 성실하면서도 자상한 면모 덕분에 직장 안에서 신망도 깊다. 딸도 훌륭하게 키워 이제 곧 시집을 보낼 예정이다. 이만하면 완벽하게 자리잡았다고 말해도 좋을 인생. 그러던 어느날 사에키에게 불행의 징조가 나타난다. 그가 이끌던 부서가 큰 거래처로부터 광고를 따내 축제분위기에 들떠 있을 무렵 찾아온 작은 건망증. 이 건망증은 점점 심해져 중요한 회의도 잊어버리는 등 그의 삶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급기야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와 병원을 찾은 사에키. 그리고 병원에서 그는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후 평생 몸을 바쳐온 회사를 희망 퇴직한 사에키와 그의 아내 에미코의 힘겨운 투병생활이 시작된다. 아내 에미코는 남편 대신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힘겹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한편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본다. 하지만 점점 심해져 가는 병은 이 두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한다. 줄거리만 봐선 ‘내일의 기억’은 평범한 신파 멜로물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끊임없는 절제와 성찰의 미덕으로 평범한 영화에서 비범한 영화로 도약한다. 감독은 과도한 눈물이나 희망적 메시지를 영화에 불어넣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인 절망의 기운을 영화에 담지도 않는다. 영화는 그저 불행에 빠지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이 불행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화면에 담을 뿐이다. 대신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한 남자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주변 사람들의 심정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해온 회사의 가족 같은 동료들과 마지막 이별을 할 때 부하 직원들이 건네는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아내가 써 놓은 세심한 메모 등 작은 부분들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진실한 느낌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한 몫 했다. 영화의 주연은 와타나베 켄.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배트맨 비긴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며, 최근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 각광 받은 그다. 주로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익숙한 그는 이번 영화에선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1990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대작 ‘하늘과 땅’의 주연으로 캐스팅 됐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촬영중간 하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는 힘든 투병생활의 경험을 영화 속 뛰어난 연기로 녹여냈다. 아내 역을 맡은 히구치 가나코 역시 헌신적이면서도 내적으로 강인한 동양여인의 친숙한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입력시간 : 2007/05/09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