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와 경제현실 사이

때문에 특히 주목을 끈다. 시장경제란 가격이나 수요공급 등 경제 현상들이 시장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정보교환및 의사결정에 의해 시장에서 해결되는 제도다. 시장경제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란 시장의 실패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시장이 올바른 기능을 유지하도록 감시, 감독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정부의 시장개입이다.그런데 정부는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같다.실제로 정부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요즘 진행되고 있는 5대 재벌의 빅딜만 보더라도 그렇게 느껴진다. 정부가 억지로 빅딜을 성사시키려 노력하기 보다는 재벌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시각에서 볼 때 옳은 길이다. 재벌들 자신이 문어발식 경영을 할 것인지 한두 업종에 집중투자할 것인지를 택하는 것이 순리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기아자동차의 빚 탕감이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엄청난 재정의 투입도 시장경제원리와는 어긋난다. 대마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줌으로써 그만큼 시장이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시장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시장의 틀이나 룰이 정립될 때까지어느 정도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시장의 실패나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은 재벌의 폐해에서 알 수 있다. 문어발 확장, 과다 차입, 자금 독식, 과잉 중복투자, 출혈 경쟁, 그리고 끝내는 환란의 한 원인이 됐을 만큼 부실을 안게 된 것들이 그런 것이다. 문제는 시장에 맡겨두어서는 폐해가 더욱 커져 국가와 국민경제에 돌이킬수 없는 역효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 후유증은 모두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정부가 지금 주도하고 있는 빅딜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반(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의 틀과 룰을 바로 세우는 과정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획일적인 평준화이다. 평준화라는 말이 언뜻 듣기에는 상당히 공평한 것 같이 들리지만 이 것같이 불공평한 것도 드물다. 평준화가 지속되면 남보다 무언가 잘하는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반면에 평균보다 못한 사람들은 평준화 덕택에 능력보다 더 높은 보상을 받게 된다. 그 예로 우리의 의료보험료 체계와 대학의 등록금을 들 수 있다. 능력있는 의사가 됐든 돌팔이 수준의 의사가 됐든 환자를 진료하고 받는 의료수가는 일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실력있고 유능한 의사는 자기의 서비스 질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유능한 의사에게서 차별화된 진료를 받고 싶어도 그런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유능하다는 의사를 한번 만나려면 3년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항간에는 대학의 서열이 뚜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 등록금의 차별화는 전혀 안되어 있다. 교육부의 규제로 전국 대학이 거의 비슷한 수준의 등록금을 책정해 놓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인센티브가 대학에 존재하질 않는다. 합격점수가 높은 대학과 낮은 대학들이 존재할 뿐이지 최상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육을 통한 인재의 발굴은 더욱 요원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시장경제란 잘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정부의 역할은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잣대와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시장이 정착되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