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6월18일] 피트 헤인


10대 외항선원, 갤리선 노예, 사업가, 해적, 해군 제독. 네덜란드의 국민 영웅, 피트 헤인(Piet Hein)의 인생 역정이다. 15~17세기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치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다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1577년 로테르담에서 외항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대 초반부터 배에 올랐다. 스무살 때 스페인 선박에 잡혀 4년간 갤리선 노예로 노를 젓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난 후에도 쿠바 연안에서 또다시 스페인에 잡혔다 풀려나는 굴절을 겪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취직해 30대 중반까지 아시아 항로를 오가던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1623년 서인도회사의 함대 부사령관으로 옮긴 후 해상약탈에 나서면서부터. 1627년에는 브라질산 설탕을 가득 실은 포르투갈 선박 30척을 빼앗았다. 이듬해인 1628년에는 16척의 스페인 무역선단을 덮쳐 1,151만길더어치의 금과 은, 보물을 약탈,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자금으로 바치는 한편 투자자들에게 75%씩의 배당금을 안겼다. 네덜란드 해군의 제독으로 정식 취임한 1629년 항해에서 스페인의 매복에 걸린 그는 6월18일 왼쪽 어깨에 포탄을 맞고 즉사했다. 뱃사람다운 최후를 보낸 그의 이름을 네덜란드는 아직도 기억한다. 터널과 호텔, 동상에서. 해군 함정에도 이름을 남겼다. 정육면체 목재 장난감을 활용한 수학ㆍ공간지각 능력 학습법인 소마 큐빅을 1936년 창안한 덴마크의 수학ㆍ물리학자이자 시인인 피트 헤인도 그의 직계 후손이다. 피트 헤인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깨뜨린 영국의 프란시크 드레이크와 닮은 꼴이다. 사략선장 출신으로 대양진출의 기틀을 다진 해군 제독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진짜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거침없이 노략질.’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