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여러 영화제가 있지만 관심이 있는 이들은 오직 해당 영화제 사무국 직원들 뿐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다. 영화제 권위가 얼마나 추락했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상 자체가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된다는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영화제가 내심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올해 81회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작들이 발표됐을 때 시상식장은 크게 술렁였다. 저예산 영화인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최우수 작품상ㆍ감독상 등 무려 8개 부분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에 언론과 평단의 주목을 끌며 올해 최고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06년 인도의 뭄바이. 빈민가 출신의 18살 고아 자말 말릭은 2,000만 루피의 상금이 걸려 있는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최고 인기 퀴즈쇼에 참가한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하고 하층민에 속하는 자말은 예상을 뒤엎고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며 최종 라운드에 진출한다. 일반인도 통과하기 어려운 퀴즈쇼에서 자말이 승승장구하자 경찰은 그가 부정행위로 문제를 풀었을 거라고 주장하며 사기죄로 체포한다. 하지만 자말은 경찰 조사를 받으며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었는지 자신의 지난 삶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며 설명한다. 결국 자말이 쇼에 출연한 목적은 돈이 아니라 어린 시절 헤어졌던 여자친구 라티카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밝혀진다. 전국으로 방송되는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첫사랑 라티카가 지켜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퀴즈쇼에 도전했던 것. 자말은 끝내 결백을 증명하고 최종 라운드에 나서는데…. 인도 외교관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데뷔 소설로 세계 36개국에 번역 출간된 '질문과 대답(Q and A)'을 영국 출신 감독 데니 보일이 스크린으로 풀어냈다. 로맨스를 기본 바탕으로 깔고 있는 휴먼 드라마지만, 인도의 계급질서와 자본주의 등 사회 문제를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에선 개봉 16주차에 1억1,5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영화제가 어떤 이유로 오늘날까지 옛 '명성'을 지키고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제의 권위는 수상작의 '수준'으로 짐작할 수 있기에 그렇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