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2000년 3월) 이후 질곡을 거듭해왔던 현대건설 진로가 만 1년만에 새로운 변곡점에 들어서게 됐다.정부와 채권단의 '3ㆍ29 출자조치'는 현대건설 주인이 은행으로 넘어갔다는 단순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적으로 큰 짐덩어리를 덜어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현대건설은 이로써 사실상 '국민기업'으로 재탄생하게 됐고 오는 4월 현대투신 외자유치와 상반기 현대전자의 계열분리(해외매각)까지 매듭되면 금융시장을 끈질기게 짓눌렀던 현대문제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된다.
회사는 확실하게 살리고 대주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정부와 채권단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나 현대 처리를 둘러싼 정부 정책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3월 이후 현대 4사(건설ㆍ전자ㆍ유화ㆍ상선)에 무려 12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 후에야 출자전환 카드를 내밀었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뒷북행정이며 이에 대한 책임론도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대규모 출자조치는 불가피했나
29일 채권단회의에 제출된 자료에는 1조4,000억원의 출자전환외에 1조5,000억원을 추가로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인수 방법으로 추가 출자하게 된 이유가 강조돼 있다.
외환은행은 현대건설이 2조9,800억원의 대거 적자로 완전 잠식에 빠짐에 따른 문제점을 크게 4가지로 압축했다.
▦신용평가기관의 등급 하향조정 ▦회사채 신속인수 대상에서 제외 ▦해외금융기관의 조기상환요청 ▦건설공사 해외수주 애로 등이 그것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첫째 방안은 부도후 청산이다.
이 경우 경제에 13조6,000억원의 경제손실과 4만2,000명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둘째 법정관리는 회생가능성이 낮고 다른 현대계열사로 파장이 파급될뿐더러 금융기관 추가 손실이 최대 28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외환은행 설명이다.
유력시됐던 감자 후 출자전환 조치는 1,84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개선할 수 없고 유동성 해소가 불가능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기업가치 극대화와 국민부담 최소화, 시장피해 최소화를 취해 최적의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어떤 모습으로 변하나
당장 은행권 공동으로 자금관리단을 파견한다. 현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은행관리 체제에 돌입을 의미한다.
부채는 8조1,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으로 차입금은 4조5,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각각 줄어든다.
자본금은 이번 적자로 마이너스 8,000억원이었던 게 2조원으로 올라선다. 부채비율은 259%까지 떨어진다.
이자보상배율도 1.3으로 올라서며, 2003년에는 2.0으로 올라선다. 이 위원장은 "CB 인수 등으로 유동성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 피해 얼마나 되나
현대건설 채권금융기관들의 손실규모는 일부 신규여신에 따른 충당금부담을 제외하고는 현대건설의 향후 경영정상화(주가) 여부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금감위의 고위관계자는 "은행권이 이번 추가지원으로 신규 적립해야 하는 충당금은 약 3,000억원으로 예상되지만 기존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서 환입되는 금액이 1,000억원에 달해 최종적인 추가손실액은 2,00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출자전환 가격이나 향후 현대건설의 경영정상화(주가상승 또는 하락) 여부를 감안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의 추정손실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볼 수 있다.
투자유가증권(주식)의 경우에는 대손충당금을 쌓을 필요가 없지만 결산기에 가면 시가대로 평가해 유가증권평가 손익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주가가 출자가격을 크게 밑돌 경우 상당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
따라서 채권금융기관들은 출자전환 이후 당분간 현대건설의 주가를 점검하며 긴장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김영기기자
이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