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1월 21일] 헌법 위배되는 위험한 착상

거래소 공공기관 기정
이래서 반대한다

지난해 말 정부가 증권선물거래소(이하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뜻을 밝혔고 그 논의가 국회로까지 옮겨졌다고 하는데 아직 정부의 방침이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다. 공공기관 지정의 이유는 거래소가 공익성이 강한 사업을 독점하면서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있어 정부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점사업을 하면서 경영이 방만하다는 데는 심한 반감이 생기는데다 공익성ㆍ공공기관과 같은 품위 있는 용어로 장식된 처방을 내린다는 것이니 언뜻 공공기관 지정이 충분한 당위성을 갖춘 듯도 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사업을 독점하고 경영이 방만하면 반드시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하는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보면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은 법리적으로 위험한 착상이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기관장과 임원을 정부가 임명하고 정부가 경영방침을 시달하고 사업을 감독하게 된다. 왜 이런 법이 생겼는가. 과거로부터 정부가 출자한 공기업들은 예외 없이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이 문제됐기에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고 만든 것이 이 법이다. 그러기에 이 법 제1조는 그 목적을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고 경영의 합리화와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목적이라면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정부의 감독을 받게 하고 이사장도 정부가 선임해서 나쁠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목적이 여하간에 우리 사회에는 넘어서는 안 될 논리가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거래소는 민간인(증권 및 선물업자)들이 돈을 모아 만들고 그 주인노릇을 하는 주식회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거래소의 경영이 방만하더라도 그것은 그 주주들이 걱정할 문제다. 정부가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심각한 재산권 침해가 되고 우리의 자유시장 경제이념을 허무는 것이다. 공익성으로 말하자면 수십만명을 직간접으로 고용하고 있는 자동차회사가 거래소에 못지않고 거래소보다 경영이 더욱 방만한 예도 있지만 정부가 이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자동차회사가 사기업이기 때문인 것이다. 거래소의 공익성이라는 것도 실은 거래소의 경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증권'시장'에 있는 것이다. 경영의 측면에서는 이사장과 임원들이 주주들을 하늘같이 알고 거래소의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고 능력이 그에 못 미치면 주주들의 의결권으로 이들을 교체하면 족하다. 그러나 증권시장에는 다수의 투자자가 군집하고 국가 경제의 동맥이 지나는 곳이니 건전한 질서하에 관리돼야 한다. 이는 거래소의 임원들에게 책임지울 일이 아닌데다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므로 증권관련법에서 불공정거래가 없도록 얼기설기 국가의 감시망을 쳐놓고 있다. 즉 거래소의 공익성을 고려한 정부의 간섭은 이미 적재적소에서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가 영단제로 출범한 후 1963년께 1년 정도 주식회사제를 취한 기간을 빼고는 30여년간 거래소는 내내 공기업으로 정부 관리하에 있었다. 이 시기라면 정부가 거래소 경영에 직접 출자자로서의 이해를 가지므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가 증권시장의 관리에 자신을 얻어 거래소를 증권업자의 회원제로 만들었다가 완전한 자본주의적 경쟁논리를 도입해 주식회사로 바꿔놓은 지금 다시 정부의 품에 안겠다는 것은 법 논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자본시장의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정책의 흐름으로 보아 뒷걸음질에 틀림없다. 거래소가 증권시장을 독점운영하면서 경영이 방만한 것이 거슬린다면 경영을 바로잡으려 할 게 아니라 꼭 거래소에 시장개설을 독점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고 복수시장을 허용해 경쟁을 유도하는 게 우리 헌법의 경제이념에 맞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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