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도 환율전쟁 뛰어드나

드라기 총재 "경기 둔화·인플레 위험 예의주시"
금리 인하 가능성… 유로 환율 2주전 수준 떨어져


'드라기가 환율전쟁에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7일자 파이낸셜타임스)

마리오 드라기(사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날 유로환율을 주시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데 대한 FT의 평가다. 그동안 유로화 강세를 두고 유럽 지도자들이 우려를 표명한 적은 있어도 ECB가 이를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시장은 향후 ECB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드라기 총재는 정례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한 후 "환율은 ECB의 정책목표가 아니지만 성장과 물가안정을 위해 중요하다"며 "유로환율이 인플레이션 위험에 초래할 변화를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드라기 총재는 미국의 양적완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장기간 유지해온 초저금리 정책이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면 (과거 경쟁적 화폐 평가절하에 나서지 말자고 한) 주요20개국(G20) 합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이를 논의해야만 한다"고 말해 오는 15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릴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회의가 환율전쟁의 격전지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밸런타인 마리노프 씨티그룹 환율전략가는 "ECB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빨리 (유로절상 저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신호를 투자자에게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자 영국 런던외환시장에서 6일 유로당 1.3523달러에 거래를 마쳤던 유로화는 이날 1.3398달러로 떨어져 2주 전 수준을 회복했다. 유로화 가치는 지난해 말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이달에는 달러 대비 1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엔화 대비로는 3년 만에 최고를 경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ECB가 유로 강세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크레디아그리콜의 시린 하라즐리 환율전략가는 "ECB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장 3월에 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추후 금리인하 여부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날 드라기 총재는 최근 "유럽 지도부가 중기 환율목표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올랑드 각하"라고 운을 뗀 뒤 "우리는 언제나 ECB가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로화 강세는 시장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를 신뢰한다는 신호"라며 "전세계가 환율 절상이나 절하를 말하지만 이런 조치에 대한 최종 판결은 시장이 내린다"고 전했다. 상황을 봐서 유로화 강세를 막기 위해 금리인하 카드는 동원할 수 있지만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닉 스피로 스피로소버린스트래티지 대표는 "드라기가 유로가치 상승을 저지하는 한편 유로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도 부각시키려 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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