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구조조정] 5대그룹개혁 정부시각

5대재벌의 구조조정노력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철이 들기 시작한 사오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정부는 재벌그룹들이 선단식경영과 오너독단경영이라는 과거의 구습을 반성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지원을 통해 사태를 쉽게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고 손실분담원칙 등 구조조정원칙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재벌들의 구조조정노력을 독려하면서 구조조정에 게을리 할 경우 정부가 실력행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킬 경우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여러차례에 걸쳐 『5대재벌의 구조조정결과가 조만간 가시화 될 것이다』, 『대우를 제외하고는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구조조정방안이 확정돼 있고 대우도 조만간 이를 확정할 것이다』고 밝혔다. 5대재벌들이 구조조정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국제신인도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李위원장은 선경그룹의 경우는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 삼성그룹은 「자동차만 명예롭게 처리하면」 내년 상반기중 부채비율이 200%이내로 들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5대그룹이 채권금융단에 제출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분석한 결과를 전한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총론적인 의미일 뿐 구조조정의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항목에 들어가면 얘기가 틀려진다. 5대재벌의 사업교환방안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사업구조조정위원회가 항공기, 철도차량, 유화 등 3개업종의 빅딜안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감위 당국자는 『5대계열의 사업구조조정추진에 대한 정부와 채권금융단의 지원은 대주주와 기업의 충분한 자구노력과 손실부담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면서 『대주주등의 자구노력없이 은행지원만 요청하는 것은 무리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고위당국자는 『5대재벌들은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것 뿐이다』고 밝혔다. 5대재벌은 충분한 손실부담능력이 있으므로 일단 자기부담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라는 원칙을 누차 표명했는데도 일부러 알아듣지 못하는 사오정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李위원장은 최근 삼성자동차의 무보증채무를 대주주와 계열사가 책임지고 해결하라며 5대재벌의 자기책임원칙을 새삼 강조한바 있다. 정부는 재벌개혁이 시급한 과제지만 이를 당근을 통해 쉽게 해결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내외 여론에 밀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용, 버티기를 통해 5대재벌이 금융지원을 이끌어내려 한다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금감위 당국자는 삼성자동차와 현대그룹이 대주주인 강원은행의 예를 들었다. 삼성자동차는 계열사보증없이 수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 현대의 강원은행에 대한 지분율은 10%를 겨우 웃돌고 있다. 정부는 삼성에 대해 무보증채무에 대해서 모두 책임을 지고 현대에 대해서는 3,000억원규모의 강원은행 자산부족액을 지분율에 관계없이 모두 매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처리하지 못하면 세계시장에서 삼성과 현대의 신용도가 하락할테니 알아서 하라는 주문이다. 과거 정부가 우리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재벌들의 동반자살론에 밀려 대마불사의 신화를 키웠다면 현정부는 거꾸로 대마가 생존하려면 법적책임뿐 아니라 관행에 의한 책임도 부담하라고 역공을 하는 셈이다. 정부가 이같은 자신감을 드러내는 배경에는 그동안 장치해둔 재벌길들이기 수단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李위원장은 『5대재벌개혁은 야생마 길들이기와 같다. 야생마를 길들일 때 무조건 안장부터 씌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울타리를 둘러 달아나지 못하도록 한뒤 훈련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신제도 등 금융개혁, 소액주주보호장치, 회계제도 선진화를 비롯한 경영투명성 제고장치 등 야생마를 가두기 위해 심어뒀던 조그만 묘목들이 성장해 점차 거대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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