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작품 '겨울가족'을 배경으로 선 화가 황영성. /사진제공=갤러리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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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성의 '큰마을'. 1970년대 회색시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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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바쁜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누구나 마음 속에 정겨운 '고향'의 이미지 하나씩은 지니고 살아간다. 화가들은 이 애틋한 고향이야기를 그림에 담는다. 박수근은 빨래하는 아낙과 아이 업은 누이의 모습으로 고향을 그렸고, 이북이 고향인 이중섭은 애타는 그리움을 화폭에 옮겼다.
원로화가 황영성(69)의 경우 나지막한 초가와 방 안 가득 채운 식구들, 큰 눈을 껌뻑이는 소 같은 정감있는 소재로 고향을 그려왔다. 그의 지난 40년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대규모 회고전 '고향이야기'가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전시 중이다. 한결같은 주제는 고향이지만 화가는 다양한 기법으로 변화를 모색했고, 그 손맛을 따라가다 보면 관람객도 마음의 고향에 닿는다.
황영성의 1970년대는 '회색시대'로 분류된다. "백의민족의 흰색을 발전시켰더니 회색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작가는 초가(草家) 그림으로 국전에서 특선까지 받았다. 아버지가 끄는 소달구지에 온 가족에 모여 앉은 '큰 시장 가는 길'(1973년작) 등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초기 작들이 전시됐다. 다닥다닥 붙은 초가 마을, 단순하게 표현된 사람들이 친근함을 전한다. 1980년작 '장터가는 길'은 뉴욕화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시골마을의 풍경을 찾아 전라도 광주 부근을 다니던 작가는 어느 여름날 푸른 보리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발견했다. 이어 1980년대 '녹색시대'가 열렸다. 현실을 넘어선 자유로운 공간배치를 모색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법'을 사용했다. 때문에 시골 논밭은 자연스럽게 사각형의 기하학적 배치를 이룬다. 가족의 큰 부분을 차지한 소(牛)도 인상적이다. 흰 소는 정감 있고, 회색 소는 우직하며, 검은 소는 패기 넘친다.
1990년 전후로 알래스카부터 페루까지 '아메리칸 인디언 루트'를 따라 여행을 다녀온 작가는 전환점을 맞는다. "내 가족, 우리 이웃의 범주를 넘어 지구적인 가족의 의미와 보편적인 인간애에 눈떴다"며 다양한 물체들을 단순화 해 빽빽하게 배열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사람ㆍ집ㆍ동물ㆍ사물ㆍ외계인 등 세상만물이 같은 크기로, 평등하게 화면에 들어차 있다.
전시 순서를 따라 최근작에 다다르면 예전 작품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한다. 결국 되돌아오는 곳은 고향이다. 작가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과 고향이고 누구나 마음에 간직한 고향, 근원적인 것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60여점의 전시작은 5월2일까지 볼 수 있다. (02)51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