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은 투신업계에게 다시없을 축복의 한 해였지만 내부적으론 수성(守城)과 공성(攻城)의 한 해였다.투신권은 폐쇄와 합병으로 압축되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97년말 신세기를 포함해 한남투신 및 일부투신운용사가 문을 닫았지만 태풍의 중심권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던게 사실이다.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반사이익과 풍부한 시중유동성, 시중실세금리의 급격한 하락으로 운용자산, 즉 수탁금이 미증유의 폭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시중 단기자금이 몰린 후발 투신운용사들이 선발 투신사의 위치를 위협하게 됐지만 단기자금이 장기자금보다 많은 기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선발 투신사들은 외형신장의 기회를 후발 투신운용사에게 빼았긴 반면 금리하락, 주가상승이라는 호기를 얻어 재무건전성면에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 97년 대통령선거 다음날인 12월19일 신세기투신이 문을 닫은데 이어 모기업인 증권사의 부도로 고려, 동서투신운용이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올들어서는 모회사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으뜸, 동방페레그린, 보람투신운용이 스스로 문을 내렸으며 급기야 지난 8월14일 한남투신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투신권은 다른 금융기관과 달리 외부에서 정한 일률적인 잣대에 따라 강제퇴출되는 수모를 면할수 있었다.
강제 구조조정에 착수하게 된다면 선발 투신사의 부실이 심해 전멸을 피할수 없는데다 과거 증시부양의 도구로 이용했던 정부의 책임도 커 미봉책이지만 재무구조 개선노력을 기울인다는 선에서 투신업계의 구조조정은 마무리됐다.
투신업계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실세금리가 연초 30%를 웃돌다가 풍부한 시중 단기자금사정을 바탕으로 하락국면에 진입하자 실세반영 속도가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투신사로 자금이 급속히 유입됐다.
투신권 수탁금액 증가금액은 1월 10조8,364억원 2월 6조1,601억원 4월 3조8,004억원 6월 2조1,961억원으로 증가세가 주춤하는가 했더니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 7월 18조5,402억원 8월 15조9,331억원 9월 9조9,270억원 10월 23조3,185억원 11월 10조5,646억원 등 올들어 지난 12월14일까지 111조6,862억원이나 늘어났다.
지난해말 83조3,576억원이었던 투신사 외형은 이 과정에서 지난 10월 은행금전신탁을 추월, 신탁시장의 패권을 차지했음은 물론 12월14일현재 198조5,311억원으로 지난해말대비 138%라는 눈부신 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외형신장의 혜택은 선발투신사보다 주로 후발 투신운용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올들어 지난 12월14일까지 선발사의 수탁금은 19조3,622억원이 늘어나는데 불과했으나 후발사들은 그보다 4배이상 많은 88조6,662억원이 증가했다.
선발 대 후발사의 외형은 14일현재 104조원 대 94조원으로 후발사가 선발사를 바짝 뒤쫓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말 78조원대 5조원이었던 선발 및 후발사간 수탁금규모와 비교할 때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급신장의 이면에는 후유증이 있기 마련이다.
자금이 유입이 단기상품에 집중됐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하는 등 상황이 급변하면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후발투신운용사들을 유동성부족사태로 몰고 갈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2월14일 현재 공사채형 상품중 만기 1년을 기준으로 한 장단기상품 수탁규모는 선발 3대투신사의 경우 각각 44조원, 25조원이나 후발 투신운용사들의 경우 각각 32조원, 60조원으로 정반대 구조를 갖고있다.
특히 경쟁적으로 자금유치에 나선 후발사들은 만기가 3개월, 6개월짜리인 단기자금으로 금리가 높은 만기 1년이상 회사채에 과다하게 투자함으로써 만기불일치(미스매칭)에 따른 유동성 쇼크위험이 극히 높은 상태다.
반면 외형신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선발투신사들은 금리하락과 주가상승으로 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연초 3대 투신사들은 사당 3조원씩의 차입금과 평균 17%에 달하는 이자부담률로 빚이 빚을 부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자부담률이 하반기들어 10%언저리로 급락했고 자기돈으로 갖고있는 주식 가격이 올라 대한투신 등 일부투신사는 올회계연도에 흑자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과거 매입해둔 11~12%짜리 저율채권을 팔지도 못하고 자기돈으로 떠안고 있던 선발투신사들은 실세금리가 8%대로 떨어지면서 차익을 내면서 되팔고 있다.
결국 98년은 후발사들에게는 외형면에서, 선발사들에게는 내실면에서 선물을 가져다 준 한해였다.
투신업계에게 오는 99년은 새로운 도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현재 선발 및 후발 투신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새로운 투자신탁 형태인 뮤추얼펀드(증권투자회사)가 선발사는 물론 후발사의 아성에 도전하게 될 것이고 이들 앞에는 또 채권시가평가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하는 어려움이 가로 놓여있는 것이다.【최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