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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현재 미국 다섯 곳을 비롯해 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홍콩 등에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유럽과 아시아의 33개 대학에서도 매년 대만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동북아 국제도시이자 많은 화교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에도 문화센터를 설치하고 싶습니다. 독일·프랑스·노르웨이 등 8개국과 매년 양국 문학작품 8권씩을 서로 번역·출간하는 '상호번역계획'을 논의 중인데 이 역시 한국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또 문화 전반적인 민간 교류 활성화를 통해 1992년 단교 이후 서먹한 한국·대만 관계를 예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만 타이베이도서전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타이베이 시내 문화부 집무실에서 훙멍치(68·사진) 대만 문화부 부장(장관)을 서울경제신문이 만났다. 취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해외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업무 파악에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대학 제자인 황바오핑 타이베이도서전 집행위원장의 힘도 컸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행정원(한국으로 치면 안전행정부와 국무총리실이 결합된 부처) 문화처장(국장) 시절인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민간단체와 함께 경극 및 무술·사찰, 원주민 문화 등 대만 공연단을 이끌고 한국에 방문했다. 또 5년 전에는 타이베이현 비서장(행정부지사)으로, 문화부 정무차장(정무차관)이던 지지난해도 다녀갔다.
그런 그가 당연히 아쉬워하는 것은 1992년 단교 이래 미미해진 양국 간 문화교류. 대만에서 시작된 한류열풍을 등에 업은 드라마·K팝 등이 아닌 전반적인 문화 교류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대만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 수는 중국·일본에 이어 3위로, 양국의 관광객 수는 비슷하다.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친밀도가 높은 대만이지만 관광지로는 한국이 더 인기 있다.
"양국 민간 문화단체의 상호 방문, 공통 이슈에 대한 토론회 등 문화행사, 양국에서 열리는 전시회 등 민간 차원의 접촉이 늘어나야 합니다. 또 각종 문화행사와 연계해 양국 관광객 수를 늘려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문화 창조, 과학·디지털과 융합 없인 도태될 것"=초대 룽잉타이(龍應台) 장관에 이어 두 번째 문화부 장관으로 이름을 올린 그는 무엇보다 과학,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문화부 산하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은 영화와 음악·출판·방송입니다. 문화부는 이 네 가지 '문화 창조' 기차의 맨 앞칸을 이끄는 '머리'입니다. 디지털과 융합되지 못한 문화는 도태될 수밖에 없고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이를 위해 문화부는 먼저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늘리고 있다. 대만 젊은 층이 많은 관심을 가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나아가 영화와 게임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돕는다. 대만 내 19개 박물관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통합 사이트 구축에 나서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요즘 젊은 만화가가 늘어나고 나아가 소규모 애니메이션 업체도 많습니다. 사업 실행 가능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이들을 연결하고 대형화하며 그 가운데 특수효과 같은 것을 분업화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그들이 서로 새 기술을 배우고 훈련받는 효과도 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 아마추어적인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최근 3D 애니메이션 '이상한 비밀번호' 제작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경극에서 유래한 대만 인형극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인데 여기에 문화부와 국가문화발전기금이 전체 제작비의 3분의1씩, 70% 가까이 지원했다. 심지어 영화가 성공해도 수익을 따로 분배받지 않는, 말 그대로 창작지원 기금이다.
◇가장 개방적인 중화권 문화 '차별성'=알다시피 대만은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만섬으로 후퇴하며 설립됐다. 해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 역시 중화 예술의 정수를 모았다는 대만국립고궁박물원. 굳이 대만의 문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 훙 장관은 중국을 비롯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 등 중국 문화권에서 대만이 가장 자유로운 문화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판을 비롯한 많은 문화활동이 여전히 정부 통제하에 있는 중국은 물론이고 많은 부분이 느슨해진 나머지 지역도 여전히 '자기 검열'에 갇혀 있다는 것.
"이전의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빨간 선' 안에 가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대만은 완전히 다릅니다. 창작자가 스스로 제안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열려 있습니다. 특히 자유로운 인터넷 문화는 젊은 세대가 세계의 유행과 패션을 빠르게 접촉할 수 있게 해주고 덕분에 소규모 창업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일종의 문화창조입니다."
또 1980년대 수십년 이어온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민감하게 통제돼온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논의도 자유롭게 발전돼왔다. 중국·대만 양안 간의 관계, 정치인 등에 대한 언급도 마찬가지다. 과거 '백색 공포정치' 시절 정부의 과오도 역사적 참고자료가 되고 기념관을 만들어 인권교육의 자료로 활용한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영화 '군중낙원(軍中樂園)'이 그 방증이다. 1960~1970년대의 억압적 군대문화와 부대가 관리하던 공창제도를 다룬 이 영화는 예전 같으면 제작 자체가 힘들었다.
"이런 자유로움이 다른 문화의 유입을 유도합니다. 대만에는 중국 본토의 여러 성에서 건너온 생활양식과 대만 원주민의 문화가 함께 존재합니다. 지난 20여년 원주민 문화에 대한 보호정책이 추진돼 오히려 원주민 문화가 전체적인 문화계로 흘러들어 대중음악 가사 속에서도 쉽게 그 영향을 엿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비슷한 듯 다른 대만 특유의 문화가 존재하는 거죠."
He is… △1947년 중국 상하이 △1969년 대만담강대 역사학과 졸업 △1975년 대만정치대 법학과 석사 △1983년 대만정치대 법학과 박사 △1993년 교무위원회 일등비서(사무관) △1995년 대만성정부 참의(서기관) 겸 외사실(대외협력관실) 주임(과장) △1997년 대만성정부 문화처 대리처장(국장 대리) △1999년 행정원 문화건설위원회 처장(국장 |
"대장금처럼… 글로컬라이제이션이 대만 문화정책 핵심" 양조장 재개발해 공연지구 설립 등 다양한 유인책으로 문화 저변 넓혀 "대만만의 문화가 사업 아이템으로 성공하면 독자적인 문화로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문화만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또 발전하는 거죠. 지금은 세계화(globalize)와 현지화(localize)가 합쳐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세계화+현지화)'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게 대만 문화정책 '문창(文創·문화창조)'의 핵심개념입니다." 훙멍치 장관은 대만 고유의 문화적 차별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문화정책은 1990년대 도시 발전과 전통문화의 융합이라는 두 가지 정책 방향을 밀어붙인 영국, 정보기술·인터넷과 문화를 융합 발전시키는 데 애썼던 유럽 선진국을 모델로 했다. 먼저 도시 및 지역 커뮤니티 형성에 힘쓰고 이후 경제적인 요소까지 고려한 문화정책을 내놓는 것. 대만에서는 지역마다 '유행음악센터'라는 대중음악 공연장과 전통 문화센터, 경극 공연장을 고르게 설립하고 상대적으로 발전된 도시 지역이 낙후된 곳을 돕는 유인책도 추진하고 있다. 또 젊은 층이 시골로 귀향하면 창업을 지원하고 문학·음악·미술 등을 가르치던 퇴직 교사를 리(里) 이하 부락 단위까지 투입해 문화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양조장이었던 지역을 재개발한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華山創意文化園區)' 역시 이런 취지에서 설립됐다. 2007년 문을 연 이곳에는 학생이나 예술단체 등이 개최하는 공연이나 전시·패션쇼·박람회 등이 자주 열린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디자인숍도 들어서 미국 뉴욕의 소호나 중국 베이징의 798 예술구를 연상시킨다. 물론 미국으로 대표되는 해외문화 유입, 세계화 추세를 거부할 수 없다. 그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잘라 말한다. "대만 국민만 좋아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게 아닙니다. 세계 모두가 좋아하고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지만 대만만의 문화가 함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미국화'와도 같은 문화의 세계화가 유행처럼 파고드는 동시에, 저마다 자기만의 문화를 찾게 되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예가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다. "'대장금'이 궁중요리를 통해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에 각인시켰고 그 음식을 통해 한국의 풍토와 특색, 친절함 같은 것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김치가 한국만의 문화라면 이런 부가가치는 기대할 수 없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