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나 돈을 빌리고 있기에….’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대출을 일으키고 있다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대기업들이 M&A를 위해 돈을 끌어들이는 모양새가 헤지펀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의 현재 금융 차입실정은 어떨까. 실제 한국은행ㆍ금융감독원 등의 은행 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대기업들은 지난해만 해도 차입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올 들어 경쟁적으로 돈 빌리기에 나서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원화 대출의 경우 대기업 대출액 증가율이 올 4월 현재 지난해 말보다 무려 30.2% 증가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 대출은 6.3%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전체 기업 대출도 8.5% 늘어났다. 한마디로 전체 기업의 0.1%에 해당하는 대기업이 올해 들어서는 기업 대출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지난 2007년 12월 말 35조8,000억원에서 올 1월 39조6,000억원, 2월 40조5,000억원으로 40조원을 넘어서더니 3월에는 43조2,000억원, 4월에는 46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5월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5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구체적 통계는 잡히지 않으나 대기업들이 원화뿐 아니라 외화 대출도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외화 대출 잔액 추이를 보면 2007년 12월에는 45조5,000억원이었으나 원화가치 절하와 외화 차입 어려움 속에서도 올 3월에는 50조6,000억원으로 11.2% 증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구체적 수치는 공개할 수 없으나 외화 대출 현황을 조사해본 결과 이중 70%는 대기업이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대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원화는 46조7,000억원(4월 기준), 외화는 35조4,000억원(3월 기준) 등 원화ㆍ외화를 합해 82조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만 해도 대기업 원화ㆍ외화 대출 잔액은 67조원가량으로 추정됐다. 불과 4개월 새 20조원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대기업이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는 이유에 대해 금융당국은 M&A 재원 마련용으로 분석하고 있다. 올 들어 대기업 설비투자가 극히 부진한 점을 고려해볼 때 상당수가 M&A용 자금이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들이 M&A에 적극 나서고 있고, 앞으로 공기업 매물이 대거 쏟아질 것으로 보여 목돈을 미리 만들어놓기 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구체적 액수는 나오지 않지만 대출액의 상당수가 M&A 자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들이 높은 조달비용을 감당할 만큼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자산운용 현황을 살펴봤는데 은행 이자를 감당할 만큼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일부 기업은 엄청난 레버리지(차입)를 통해 M&A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대기업 대출 연체가 금융시스템에 즉각적 파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시장 상황을 면밀히 지켜본 뒤 무분별한 대출이 지속될 경우 시장 개입 등의 대책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