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작은 러시아였다. 끝도 없이 “러시아! 러시아!”를 외치는 이들 때문에 한쪽 귀가 멍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쿠이아바의 판타나우 경기장의 본부석 맞은편 관람석 4층 난간은 이미 모두 러시아팬들이 차지했다. 골대 뒤쪽이 아닌 전면이라 경기를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브라질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앉으라”고 했지만 들은 체 말은 체였다. 처음에는 “러시아”만 외치더니 전통 민요 ‘카츄사’까지 불러 대며 그 자리에서 마구 뛰어댔다. 건장한 남자 수십명이 한번에 땅을 구르니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17일 오후6시(현지시간) 전반전이 시작한 순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들은 2시간 가까이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말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선창을 하면 위에 있는 러시아 팬들이 받았다. 브라질 안전요원들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러시아 극성팬의 놀이터였다.
붉은 악마와 교민 응원단도 러시아 팬들이 있는 관람석에 같이 있었지만 섬처럼 보였다. 본부석 쪽과 경기를 다 내려다 볼 수 없는 골대 뒤쪽은 브라질 사람들이 들어찼다.
러시아팬들의 응원이 과도해지자 갑자기 같이 있던 브라질 사람들이 “브라질리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전반 26분이었다. 브라질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꼬레아”를 응원했다. 브라질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제멋대로 구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대한민국~짝짝짝짝짝’하는 소리도 사이사이 들려왔다.
러시아 팬들도 지지 않았다. 브라질 사람들의 응원에 손을 귀에 가져다 대며 들리지 않는다는 몸짓을 취했다. 한국을 응원하는 브라질 사람에게는 자신의 눈을 양옆으로 찢으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던 러시아 팬들이 순간 얼어붙었다. 이근호의 발끝에서 골이 터진 직후였다. 후반 23분 러시아팬들은 약 1분간 침묵했다. 브라질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골~”을 외쳤다.
하지만 곧 다시 살아났다. 그들의 응원에 힘입었는지 케르자코프가 동점골을 터뜨렸고 러시아 사람들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기자 옆에 앉은 브라질인은 러시아 사람들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리더니 “꼬레아”라고 소리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태극기를 들고 우리나라를 응원했다. 4만2,968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는 3만7,603명이 들어찼다. 러시아와의 경기는 비겼지만 응원에서는 이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