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이 재정위기와 기금 고갈 등을 이유로 연금 지급연령을 잇따라 상향조정하면서 베이비 부머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노후 자금이 바닥나고 있는 마당에 직장에서 은퇴 후 연금을 받을 때마다 거의 10년 동안 소득이 없는 상태에 빠지면서 생활고에 허덕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를 인용해 29개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이 평균 67세 이상으로 연금지급 연령을 상향조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가입 회원국의 45%에 달한다. 지급 연령을 65세로 인상하려는 국가를 포함할 경우 17개에 이른다.
이탈리아와 덴마크의 경우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평균 수명에 연동시켜 장기적으로 69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도 현재 60세인 후생연금지급 개시연령을 68~70세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폴란드는 연금 개혁을 위해 정년을 67세까지 점차 늘리기로 정치권이 합의했다. 정년 연장안은 현재 남자 65세, 여자 60세인 정년을 2013년부터 매년 3개월씩 늘려 남자는 2020년, 여자는 2040년까지 모두 67세로 높이기로 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도 연금 고갈 우려가 커지자 여성 근로자의 연금 개시 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6세로, 남성 근로자는 연금 납부 기간을 현행 40년에서 42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영국 정부도 연간 320억 파운드에 이르는 연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단계적으로 늦추고 연금 납입액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들 OECD 회원국 외에도 중국 등 신흥국도 연금 수급 연령의 상향조정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 이후 퇴직 연령을 남자 만 60세, 여자 만 50세(간부 55세)로 정해 운영하고 있는 연금 개시 시점을 상향조정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저출산ㆍ고령화와 맞물려 연금 재정의 고갈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퇴직자와 장애인에 대한 연금을 지급하는 사회보장연금의 재정이 당초 추계보다 3년 빠른 오는 2033년에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연금재정의 미래는 갈수록 암울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선진국의 경우 2050년 65세 이상 인구가 15~64세 계층에게 경제력을 의존하는 비율이 현재 24%에서 48%로 높아져 취업자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 같은 연금개혁이 은퇴자들의 삶의 질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연금 체제가 정착되지 않은 일부 국가의 노년층은 더 큰 타격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OECD는 "일본과 미국, 한국 등 공적 연금의 액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개인 연금이 의무화돼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퇴직 후 큰 수입의 침체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사회 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부터 연금개혁에 반발해 공공노조의 총파업이 빈발하고 있고, 프랑스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퇴직 2년 연장을 추진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연금개혁안을 전면 백지화 하기로 했다.
이처럼 연금 개시 연령이 늦어지자 직장인들이 은퇴 시기를 미루면서 세대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시카고 연방은행의 에릭 프렌치와 데이비드 벤슨 연구원은 "금융위기로 인한 가계 자산 감소 등의 여파로 은퇴 적령기를 넘어선 상당수 베이비부머들이 고용시장에 남아 있다"며 "이는 청년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