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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찾은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 본사. 이달 말까지 이어질 정기보수(TA)가 한창인 제2공장에 들어서자 핵심설비인 원유정제탑이 위용을 드러냈다. 길이 60m, 무게 750톤에 달하는 원유정제탑은 1994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평양을 건너 원래 모습 그대로 이곳까지 이른 설비다. '공장을 통째로 옮긴다'는 현대오일뱅크의 기상천외한 혁신을 생생히 입증하는 증인이다.
1993년 극동정유를 인수하고 출범한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의 일일 원유 정제량은 불과 11만배럴. 규모가 생존을 좌우하는 정유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대규모 증설이 최대한 빨리 이뤄져야 했다. 정몽혁 당시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은 고심 끝에 텍사스주 휴스턴에 설립 10개월 만에 가동을 중단한 채 새 주인을 찾는 최신식 정유공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지으려면 3년이 필요했지만 설비를 통째로 이전하면 1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경영진은 지체 없이 매입에 나섰고 이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산업설비 이전 프로젝트가 됐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작업에 대해 "해체한 설비를 바지선과 컨테이너선에 실어 태평양을 횡단하고 부산과 울산으로 보내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라며 "무모할 정도의 발상이었지만 결국 단기간에 일일 정제량 20만배럴짜리 제2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제2공장은 일일 28만배럴까지 정제능력을 확대한 상태다.
현대오일뱅크의 이 같은 '스피드 혁신'은 2015년 현재 롯데케미칼과 합작한 신사업 추진현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보수작업에 여념이 없는 대산공장 설비들 사이에는 현재 '쿵 쿵'하는 굉음이 쉴 새 없이 들리는 22만㎡ 규모의 건설현장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6대4의 지분비율로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해 짓고 있는 현대케미칼 혼합자일렌(MX) 공장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여태까지 벤젠·파라자일렌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MX를 대부분 수입해왔지만 MX의 글로벌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자체 공급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오는 2017년 본격 생산에 돌입하는 현대케미칼은 연간 MX 100만톤 이상을 생산해 매출 5조8,000억원을 올릴 계획이다.
현재 공장은 아직 터 닦기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나 내년 초에는 주요 설비를 설치하고 내년 12월에는 상업가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계획이다. 통상 48개월이 걸리는 공기를 절반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공사에 참여한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설계를 마무리 짓고 시공에 돌입하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설계·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속도전을 편 덕분"이라며 "최대한 빨리 상업가동을 시작해야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에 따르면 강달호 대산공장 안전생산본부장(부사장)은 공사를 독려하기 위해 새벽4시부터 손수 오토바이를 타고 건설현장을 돌아본다.
현대오일뱅크는 이처럼 속도전으로 신사업을 안착시킴으로써 경쟁사에 비해 작은 규모와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는 악조건을 돌파하고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2014년 말 기준 현대오일뱅크는 일일 정제량 39만배럴로 SK이노베이션(111만5,000배럴), GS칼텍스(77만5,000배럴), S-OI(66만9,000배럴)에 비하면 아직 작다. 국제유가 상황도 만만치 않다. 업계는 현재 배럴당 60달러 언저리인 국제유가가 55~65달러의 박스권을 장기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00달러를 넘나들었던 지난해에 비하면 35% 이상 내려간 것이다. 현대오일뱅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빠르게 저유가에 대비해 원가를 절감함으로써 국내 정유사 중 유일한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할 수 있었다"며 "이 같은 민첩한 위기대응이 현대오일뱅크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