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트 프린터로 「프린터 왕국」을 건설했던 세이코엡슨이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 내렸던 잉크젯 프린터로 명예회복에 나섰다.
엡슨의 잉크젯 프린터는 「마이크로-피에조」라는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갖고 있다. 피에조란 압전소자를 이용해 잉크를 뿜어내는 기술. 엡슨은 이 기술로 프린터업계의 최강자로 다시 등극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피에조 기술을 적용한 프린터헤드는 한번 움직이는 동안 대·중·소 3종류의 잉크를 뿜어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쇄 선명도를 높이고 속도를 높이는 데는 이제껏 나온 기술 가운데 최고의 성능을 보인다고 자부하고 있다.
80년대 도트프린터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다 잉크젯 시장에서 휴렛팩커드(HP)에 왕좌를 빼앗긴 엡슨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개발해 낸 비밀병기인 셈이다.
세이코엡슨의 선두 도약 목표는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프린터는 모두 1,800만대. 일본시장에서 6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부동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고, 20%내외에 머물던 미국, 유럽,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30%선까지 올라서며 1위에 진입하고 있다. 엡슨은 2000년 선두탈환이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장담한다.
프린터 왕국-세이코엡슨의 역사는 11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이코엡슨은 회사 이름에서 엿보이 듯 시계 브랜드인 「세이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세이코는 정밀공업을 의미하는 정공(精工)의 일본어 표현이다.세이코엡슨의 전신은 1881년 핫토리씨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핫토리 시계점. 핫토리씨는 이후 직접 시계생산에 나섰고 1942년 나가노현 스와지방에 스와세이코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세이코는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서 68년 미니프린터 「EP101」를 빅히트하면서 75년에는 「엡슨」이라는 브랜드까지 만들고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엡슨 브랜드는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미니프린터 EP(Eletric Printer)와 EP를 토대로 「성공하는 자손」을 배출하자는 의미에서 영어 「SON」을 붙여 만들었다. 동양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소박한 바램의 표현이다.
엡슨의 성공으로 세이코는 85년 세이코엡슨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세이코엡슨은 전자기술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업부문을 계속 확장했다. 프린터 브랜드였던 엡슨은 이제 스캐너, 컴퓨터, 멀티미디어, 프로젝터, 디지털카메라, 반도체, LCD모니터, 쿼츠디바이스, 정밀모터 등으로 포함하게 됐다.
「정밀과 전자의 만남」은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이어졌다. 액정표시 디지털쿼츠시계를 세계 최고로 개발했고 88년에는 자가 발전기를 넣어 전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쿼츠디바이스는 삼성, 현대, 대우, LG등 대부분의 국내업체들도 사다 쓰고 있다.
세이코엡슨의 지난해 매출은 1조600억엔(10조6,000억원 상당). 이 가운데 시계는 7%에 불과하다. 이젠 시계회사라고 하기도 어색해진 셈이다. 대신 프린터나 컴퓨터같은 정보기기가 57%, 전자디바이스가 27%를 차지했다.
세이코엡슨은 2010년까지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지난 95년부터 착실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사장 직속으로 전담기구를 두고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기기와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제조공정을 개발하는 등 환경보전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이코엡슨은 프린터와 스캐너, 디지털카메라를 공급하는 「한국엡손」과 전자부품 및 LCD모니터등을 공급하는 「세이코엡슨」이 지사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다.
특히 지난 6월1일 삼보컴퓨터로부터 프린터 국내 독점판매권을 2,000만달러에 인수하고 새롭게 출발한 한국엡손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삼성전자와 HP의 아성 허물기에 나섰다.
연간 100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광고판촉을 펼치고 전국순회 로드쇼를 개최하며 경쟁사 제품과 출력속도를 비교 전시하는 등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인력을 충원하고 고객지원체제 정비에도 나섰다. 특히 피에조 기술이 최고의 프린팅 기술임을 적극 홍보, 「헤드가 좋은 프린터」를 적극 알리고 있다.
한국엡손은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올초 20% 이하로 떨어졌던 시장점유율을 최근 25%까지 높이는데 성공했다. 한국내 올해 매출목표는 1,000억원.
2000년 국내 1위를 천명한 한국엡손의 행보가 국내 프린터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문병도 기자】